학습 선택권 확대하는 역발상으로 딜레마 해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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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 ‘학습자 경험 중심’으로 교양교육 개편

대학생들은 선택하고 싶지 않은 교과목을, 단지 졸업하기 위해 수강해야 하는 교양필수 제도에 불만을 갖고 있다. 학습자의 선택권을 침해할 수도 있는 교양필수 제도는 총학생회 논의에서, 각종 설문조사에서, 학생들의 SNS에서 제기되는 단골 이슈이다. 대다수 학생들의 입장은 명확하다. ‘교양필수 제도를 폐지해 학습자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에 각 대학은 ‘교육목표 달성을 위한 교양필수 제도 유지’와 ‘학습 선택권 보장을 위한 폐지’라는 두 선택지 사이에서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다. 많은 대학이 어쩔 수 없이 교육 수요자의 목소리를 접어둔 채 교양필수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가 하면, 일부 대학은 교양필수 제도를 과감히 폐지해 학습 선택권을 확대하는 방안을 택하기도 한다.

숭실대학교(총장 장범식)는 2023학년도부터 혁신적으로 교양교육과정 개편을 단행했다. 교양필수를 오히려 강화하면서도 학습자 선택권을 확대하는 역발상으로 딜레마를 해결했다. 교양필수 이수학점은 기존 16학점에서 19학점으로 높였다. 반면 기존 8개에 불과한 교양필수 교과목을 27개로 확대 편성했다.

학습 선택권을 확대하면서도 ‘대전환 시대의 창의력을 갖춘 품격있는 숭실인 양성’이라는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양필수 영역을 3개 소영역, 9개 교과목군, 27개 세부 교과목으로 개편했다. 3개 소영역은 △창의력(6학점) △품격(8학점) △디지털테크놀로지(5학점)로 구성돼 있다. 소영역의 하위 분류인 9개 교과목군은 △인문적 상상력과 소통 △비판적 사고와 표현 △창의적 사고와 혁신 △인간과 성서 △글로벌 시민의식 △글로벌 소통과 언어 △한반도 평화와 통일 △컴퓨팅적 사고 △SW와 AI가 있다. 세부 교과목은 교과목군 내에서 학생들이 선택해 수강하는 맞춤형, 수준별 교과목을 의미한다.

기존 교양필수는 지정된 단일 교과목만 수강해야 했지만, 2023학년도 입학생부터는 교과목군의 세부 교과목 중 한 과목을 선택해 수강하면 된다. 예를 들어 개편 전에는 모든 신입생이 ‘독서와 토론’ 한 과목만 획일적으로 수강해야 했지만, 개편 후에는 ‘인문적 상상력과 소통’ 교과목군 내에 ‘인문적 상상력과 데이터 기반 토론’, ‘융합 독서 디베이트’, ‘디지털 미래 세계와 소통’, ‘고전 읽기와 상상력’ 등 4개의 세부 교과목 중 본인이 원하는 한 과목을 수강하면 졸업 이수 요건을 충족하게 된다.

이는 방송국에서 퀴즈 프로그램을 편성할 때 같은 시간대에 ‘장학퀴즈’ 단일 프로그램만 있었다면, 이를 시청자 관점에서 개편해 같은 시간대에 ‘퀴즈 대한민국’, ‘일대백 퀴즈’, ‘생방송 퀴즈가 좋다’,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등을 제작 편성하고 시청자들이 그중 하나를 선택해 시청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시청자 중심 방송 시스템은 프로그램 개발에서부터 운영까지 막대한 인력, 기술, 재정 등의 자원을 투입해야만 가능하다. 숭실대는 교육 수요자의 학습 선택권 확대를 위해 충분한 예산을 투입해 ‘학습자 중심 교육시스템’을 구현했다.

숭실대는 ‘교양필수를 폐지해 학습자 선택권을 확대하라’는 학생들의 목소리에 오히려 교양필수를 강화해 학습자 선택권을 확대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인재상과 교육목표 달성’, ‘학습자 선택권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숭실대의 학습자 중심 교육시스템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숭실대는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교육혁신 생태계 구축’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27개 교양필수 교과목을 학습자 경험 중심 수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바로 학생 참여형 경험학습(Engaged Learning·EL) 수업모델이다. EL은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활용해 학습자가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내 해결방안을 도출하고, 이를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경험학습 중심 수업으로 숭실대의 대표 혁신 수업모델이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장 자크 루소의 ‘에밀’,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등을 읽으면서 스스로 소년범 문제를 인식하게 되고, 인문적 상상력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년범의 교정이론과 형벌이론의 해결방안을 도출한 뒤 이를 소년원, 초중고교, 지역사회 등 현장에서 적용해보는 ‘소년범을 위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경험을 통해 학습한다.

숭실대가 구축한 학습자 경험 중심 교육시스템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경험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학습자가 교육의 중심이 되고, 교육과정에서 능동적인 주체가 돼 스스로 보고 듣고 느끼며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을 육성하는 시스템이다. 숭실대의 교양필수 교과목은 강의실보다 현장에서 경험하는 수업에 방점을 둠으로써 학생들은 표면적이고 추상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지식을 만들어가게 된다.

교양필수 과목의 성적평가 방법도 상대평가제에서 ‘성취 기반 절대평가제’로 전면 개편했다. 일반적인 절대평가제와는 달리 성취 기반 절대평가제는 학생별 개인 성취 수준을 근거로 평가항목별로 절대평가하는 방법이다. 이는 학습자 경험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 취지를 실천할 수 있는 평가이다. 이를 위해 숭실대는 27개 교양필수 교과목마다 학습자 수행과정 및 결과를 평가하는 루브릭 평가도구를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숭실대 교양필수 교육과정의 학습자 경험 중심 교육시스템은 학습자 선택권 확대, 경험 중심 EL 혁신 수업모델 적용, 성취 기반 절대평가제 도입 등을 축으로 하여 구현되며 이를 다면적으로 평가하는 ‘인/아웃사이드 환류 체계’를 구축해 놓고 있다.

2023학년도 신입생들은 교양필수 교육과정의 학습자 경험 중심 교육시스템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학생들은 강의평가와 설문조사에서 “직접 경험해 보는 수업이었기에 수업 내용에 흥미가 컸고, 몰입할 수 있었다”, “사회문제에 대해 토론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배운 것을 현장에 적용시킬 수 있어 좋았다”, “항상 끌려다니는 교육을 받았는데 내가 스스로 교육을 이끌어 나가는 기분이어서 만족스러웠다”고 답변했다. 또 “형식적으로 암기하고 서술하는 지필고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유하고 토론할 수 있어서 좋았다”, “중고등학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수업 방식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우리 사회가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러한 수업 방식이 분명 필요한 것이고 그런 능력을 키울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숭실대는 학습자 경험 중심 교육시스템이 교양필수 교육과정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평가하고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학생이 스스로 배우고 연구 개발하며 평가하고 홍보하는 학습자 중심 ‘숭실교양공동체’를 구성해 산하에 △교양교육 데이터사이언스팀 △교양교육 평가팀 △교양교육 홍보팀 △소수집단학생 교양교육팀 등을 운영할 예정이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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