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내 남편”…5·18 유족의 한 맺힌 43년

  • 뉴시스
  • 입력 2023년 5월 17일 10시 50분


코멘트
“숨진 우리 가족들 잊지 말아주소”

5·18민주화운동 43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숨진 가족들을 찾는 ‘5·18 어매’들의 고요한 흐느낌이 이어졌다.

유족들은 43년 전 숨진 아들과 딸, 남편을 기리는 추모식을 거행하며 마르지 않는 눈물을 하얀 소복 적삼 옷소매로 겨우 닦아냈다.

고(故) 권호영 열사의 어머니 이근례(83) 여사는 까까머리 고등학생으로 남은 권 열사의 영정사진을 하염없이 어루만졌다.

권 열사는 1980년 5월 26일 남동생을 찾으러 외출했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여수에서 지내던 권 열사와 가족들은 권 열사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79년부터 광주 계림동에 정착했다. 가정 형편 탓에 대학 진학을 미뤄온 권 열사는 장남으로서 동생 4명의 뒷바라지를 하며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1980년 초 학원가 내 정권 타도 시위 움직임이 격해지며 학원을 쉬어온 권 열사는 계엄군의 금남로 집단 발포가 있었던 1980년 5월 21일 둘째 동생이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둘째를 찾는 가족을 보태기 위해 5월 26일 바깥으로 나선 권 열사는 금남로에서 마지막으로 행적이 확인됐다가 영영 사라졌다.

이 여사 등 가족들은 그해 8월 가까스로 둘째를 찾았으나, 권 열사는 5·18 22년 만인 2002년에서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내 무명열사 묘소에서 백골의 모습으로 어머니와 재회했다.

이 여사는 “43년 세월을 보내며 눈물이 마를 줄 알았지만 매년 5월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흐르더라”며 “후대들이 아들을 잊지 않는 것만이 남은 여생 동안 바라는 것”이라고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같은 시간 고 임수춘 열사의 아내 윤삼례(81) 여사도 남편의 묘소를 찾았다.

윤 여사는 정성스레 깎아온 사과를 제단에 바친 뒤 말 없이 소주병을 따 묘소 곳곳에 부었다.

숨진 남편을 향해 ‘신랑’이라고 다정히 부르던 윤 여사는 차오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임 열사는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에 휘말려 희생된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5월 21일 동구 학동에서 작은 잡화상을 운영하고 있던 임 열사는 바깥에 주차된 오토바이를 안으로 들여놓기 위해 가게 밖으로 나간 순간 계엄군의 몽둥이에 머리를 맞아 쓰러졌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진 임 열사는 이튿날 숨졌다.

임 열사가 세상을 떠나면서 세 아들을 키우는 몫은 윤 여사에게 돌아갔다. 윤 여사는 가세가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해 허드렛일도 서슴치 않으며 43년 세월을 보냈다.

원망과 분노를 떠나보낸 윤 여사에게 남은 것은 남편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 뿐이다.

윤 여사는 “장성한 아들들을 보고 있으면 먼저 떠난 남편이 눈에 선하다. 매년 5월마다 스스로 다독이고 가슴을 두드리며 설움을 풀고 있다”며 “묻어둔 그리운 마음 모두 남편을 다시 만나게 될 날 고스란히 챙겨가고 싶다”고 말했다.

[광주=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