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간 이름 없이 떠돌던 절도 피의자 이름 찾아준 검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3일 17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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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희 검사. 대구지검 공익대표 전담팀 팀장
이웅희 검사. 대구지검 공익대표 전담팀 팀장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69년 한평생을 이름, 나이, 주소도 없이 살았다.”

2021년 9월 절도 피의자로 검거된 한 남성은 69년간 ‘없는 사람’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열살 무렵 어머니와 헤어져 보육원에서 자란 그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무적자(無籍者)’였다. 갈 곳 없이 떠돌던 그는 폐지를 줍거나 노숙 생활을 하며 삶을 이어갔다. 주민등록이 없다 보니 기초생활수급자 생계급여나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서비스를 꿈조차 꾸지 못했다.

추운 겨울이면 일부러 물건을 훔쳐 교도소에 몸을 의탁하기도 했다. 그렇게 저지른 절도만 20여 회, 교도소 수감 생활도 7차례에 달했다. 숱하게 수사기관을 오가고 형사처벌을 받는 과정에서도 지문으로 신원 등록이 대체됐을 뿐, 그가 누구인지 찾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 같은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대구지검 검사와 수사관들은 그의 성명을 찾아주기로 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해 문맹인 그를 위해 공단 소속 법무관이 전담팀 조사 기록을 넘겨받아 대리했다. 주소지는 대구지검 산하 시설의 주소를 빌렸고, 가족이 없는 그를 위해 전담팀 소속 검사와 수사관이 직접 신원보증인으로 나섰다. 여러 명의 뜻이 모인 끝에 지난해 7월 대구가정법원은 그가 어릴 적 기억하는 이름으로 성(김 씨)과 본을 인정하고 가족관계등록부 창설을 허가했다. 이렇게 이름을 되찾은 김모 씨는 대구지검 ‘공익대표 전담팀’에 “많이 반성하고 있고 앞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성실히 살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사진 왼쪽 두번째부터 이웅희 대구지검 검사, 조서윤 서울중앙지검 수사관, 이원석 검찰총장, 최영희 수원지검 평택지청 수사관, 이준영 대구고검 행정관, 김현미 청주지검 수사관. 대검찰청 제공


이웅희 대구지검 검사(37·변호사시험 2회)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 따뜻한 검찰인’으로 선정됐다. 대검은 “이 검사 등 전담팀은 김 씨 등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 재범을 방지하고 국민의 권익을 보호했다“고 평가했다. 대검찰청은 2016년부터 감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매년 5명을 ‘따뜻한 검찰인’으로 선정해 표창해왔다.

이 검사는 대구지검 공익대표 전담팀 팀장으로, 수사・기소 등 전통적인 검찰의 역할을 넘어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실종선고 취소, 성본 창설, 친권 상실 청구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가정불화로 가출한 후 가족의 실종신고로 사회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던 취약계층에 있는 할머니의 사정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전해 듣고, 지난해 7월 직접 실종선고 취소를 청구하기도 했다. 이후 한 달 만에 실종선고가 취소돼 기초생활 수급, 긴급 복지지원과 지역 사회 연계 복지 서비스도 제공받도록 긴급조치가 이뤄졌다.

이 검사 외에도 △소아 혈액암 환자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고, 빈곤 장애아동을 위한 꾸준한 기부활동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한 조서윤 서울중앙지검 수사관 △200회 넘는 헌혈과 기부 봉사활동을 실천한 이준영 대구고검 행정관 △실종신고로 수년간 사망자로 살아오면서 대인기피 증세를 보인 민원인의 주민등록회복과 복지혜택 신청을 도운 김현미 청주지검 수사관 △이름을 도용당해 다수의 전과를 갖게 된 치매 노인의 전산 기록을 모두 말소하고 억울한 누명을 풀어준 최영희 수원지검 평택지청 수사관 등이 ‘2022년 따뜻한 검찰인’으로 선정됐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13일 수상자들에게 직접 표창을 수여하고, 이웃과 지역사회에 ‘따뜻한 검찰’의 모습을 보여준 검찰구성원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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