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방지시설 총체적 부실” 감사원, 1년전 콕집어 지적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12일 1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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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밤 서울 강남구 강남역에서 교대역 가는 방향 진흥 아파트 앞. 도로기 물에 차 차는승용차와 버스들이 엉켜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8일 밤 서울 강남구 강남역에서 교대역 가는 방향 진흥 아파트 앞. 도로기 물에 차 차는승용차와 버스들이 엉켜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8일부터 11일까지 수도권과 중부지역을 강타한 역대급 호우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2일(오늘) 오전 6시 기준으로 사망자 14명에 이재민만 1500 명을 넘어섰다. 앞으로도 피해 규모는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폭우를 몰고 왔던 기상전체전선이 15일 밤부터 다시 수도권과 중부지역에 형성될 것으로 예보되고 있어서다.

문제는 이처럼 호우로 인한 침수 피해가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라 매년 계속되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홍수 피해 역시 인재에 가깝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감사원이 지난해 대대적인 감사를 통해 홍수 관련 시설물이 설계기준부터 유지관리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부실하게 운영돼온 사실을 밝혀낸 감사보고서(‘도시지역 저류시설 안전관리실태’)는 이런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지난해 9월 공개된 이 보고서는 감사원이 지난해 행정안전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 중앙부처와 서울시 부산시 세종시 등 특·광역시를 대상으로 3개월 동안 실시한 감사 결과를 담고 있다. 감사는 도시지역의 침수 예방을 목적으로 전국 각지에 설치 운영되고 있는 빗물저류시설과 빗물펌프장 1368개의 운영실태 전반에 걸쳐 진행됐다.
● 방재시설 설계기준부터 부실
보고서에 따르면 저류시설 설계에 적용되는 방재성능목표가 우선 부실했다. 방재성능목표는 정부가 홍수, 호우 등으로 발생할 재해 예방을 위한 방재정책 등에 적용하기 위해 설정하는 것으로 처리 가능한 시간당 강우량 및 연속 강우량 목표이다.

그런데 감사 결과, 행안부는 기상청 강우관측자료 624개 가운데 69개만 활용하여 지역에서 관측되는 실제 강우량보다 낮은 확률강우량으로 방재성능목표를 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방재성능목표에 맞게 방재시설을 설치한 곳에서 강우로 인한 침수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행안부는 당시 이같은 지적을 담은 언론보도가 이어지자 “(현재 사용되는) 방재성능목표는 2017년에 설정한 것으로, 강우 관측값의 정확도 확보를 위해 상대적으로 신뢰성이 높으나 개소 수가 적은 기상관측소를 활용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2022년 새로운 방재성능목표를 설정할 때 사용 가능한 다양한 기상관측소 자료를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로운 방재성능목표는 아직까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행안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올해 말까지 새로운 방재성능목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관련 기관(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 시설기준 미달업체에도 국비 지원
지자체의 우수저류시설 설치를 지원하기 위해 2009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우수저류시설 설치사업’ 운영도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지자체는 관련법(‘자연재해대책법’)에 따라 매년 우수유출저감시설 관련 사업계획을 수립해 행안부에 제출하고, 행안부는 사업계획과 설계도 등을 검토한 뒤 필요한 비용 전액 또는 일부를 국고로 지원한다.

그런데 우수저류시설 설계 시 최소 50년 빈도 확률강우량을 적용하도록 규정돼 있는데도 일부 시설(우수저류시설 78개 중 30개)가 기준보다 낮은 확률강우량을 적용했다. 하지만 행안부는 이런 곳들에도 국비 지원을 허용했다.

사후 관리도 부실했다. 우수저류시설은 하수관로·빗물펌프장과 연결돼 있어 특정시설의 성능이 미흡하면 다른 시설이 개선돼도 침수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하지만 행안부는 우수저류시설 설계검토 과정에서 연계 방재시설이 개선되지 않으면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경우에도 이를 개선하겠다는 지자체 의견만 듣고, 이후 실제 개선 여부는 확인하지 않았다.

그 결과, 31개 우수저류시설이 연계 방재시설의 신설·증설 등 별도의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 가운데 21개는 별도의 개선사업이 추진되지 않으면서 우수저류시설 설치기준 미만의 강수에도 침수피해가 발생했다.
● 시설물 안전 관리도 미흡
빗물이 흘러내려갈 우수관로와 빗물펌프장에 대한 안전관리도 부실했다.

지자체 등은 관련법에 따라 하수관로에 대한 기술진단을 5년마다 실시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환경부는 하수관로의 30.8%를 차지하는 분류식 우수관로(오수와 빗물을 따로 흐르게 만든 하수관로)를 기술진단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로 인해 관로 내 불량이 확인·해소되지 않아 침수피해의 예방효과가 저하될 우려가 큰 것으로 지적됐다.

또 빗물펌프장(전국 823개) 중 국가하천과 지방하천 등에 연결된 빗물펌프장(555개)은 안전관리가 이뤄졌지만 소하천 및 해안 등에 연결된 빗물펌프장(268개)은 형태나 기능이 같은데도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했다.

이로 인해 집중호우가 발생할 때 관련 시설물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침수피해가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됐다. 실제로 감사원이 268개 가운데 10개를 선별해 현장점검을 실시한 결과, 펌프설비가 부식돼 있거나 유출수문이 개방되지 않는 등 보수·보강이 필요한 문제점이 다수 확인됐다.

또 집중관리 대상 시설물로 지정된 212개 빗물펌프장 가운데 52곳은 시설물통합정보시스템(FMS)에 등록돼 있지 않거나 잘못 등록돼 있었고, 관련법(‘시설물안전법’)에 따른 관리계획도 수립돼 있지 않았다. 또 안전점검이나 정밀안전진단도 받지 않은 상태로, 현장 점검 결과 기계적인 고장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이번 홍수 피해가 이례적인 강수량에서 비롯됐지만 피해 발생 양상은 과거와 똑같다”며 “감사원 지적을 포함해 이미 반복된 홍수 피해를 통해 제시됐던 대책을 조기 실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지 않으면 홍수피해는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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