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동료가 노트북 해킹해 SNS 비번 알아냈는데 무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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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년 4월 26일 14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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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비밀번호 등 보안 설정이 없는 컴퓨터에 해킹 프로그램을 몰래 설치해 타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낸 것 자체는 죄가 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다만 해킹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피해자 계정에 접속하고, 사진과 문자 등을 내려받은 행위에 대해선 유죄가 인정됐다.

26일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전자기록 등 내용탐지와 정보통신망법 위반(정보통신망 침해 등) 혐의를 받은 A 씨(35)의 상고심에서 일부 혐의를 무죄로 보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A 씨는 2018년 8~9월 회사 사무실에서 직장 동료 B 씨(31·여)의 노트북에 해킹프로그램을 몰래 설치해 B 씨의 인터넷 메신저와 검색엔진의 아이디·비밀번호를 알아냈다. B 씨 노트북은 화면보호기 등 별도의 보안장치가 설정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A 씨는 해킹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이용해 B 씨 계정에 접속했고 B 씨가 다른 사람들과 나눈 대화 내용과 사진을 40여 차례 무단으로 다운로드했다.

검찰은 A 씨가 해킹프로그램을 이용해 B 씨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낸 행위에 전자기록 등 내용탐지죄를 적용해 기소하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피해자 계정에 접속한 행위와 대화 내용 등을 다운로드한 행위는 정보통신망 침해죄 등을 적용해 기소했다.

1심은 검찰이 기소한 3가지 혐의 모두 유죄로 보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의 판단은 달랐다. 검찰의 공소사실 중 2가지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A 씨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낸 것 자체는 무죄로 판단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 자체는 형법이 정하는 ‘특수매체기록’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형법 316조 2항은 봉함 기타 비밀장치한 사람의 편지, 문서, 도화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의 내용을 기술적 수단을 이용해 알아낸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때 ‘특수매체기록’은 기록된 것이어야 하고 특정인의 의사가 표시돼야 하는데 A 씨가 알아낸 아이디와 비밀번호 자체는 특정인의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보기 어려워 특수매체기록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2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대법원도 2심과 마찬가지로 A 씨가 피해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낸 것은 무죄로 봤다. 하지만 무죄라고 판단한 이유는 달랐다. 재판부는 “이 사건 아이디 등은 전자방식에 의해 피해자의 노트북 컴퓨터에 저장된 기록으로서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에 해당한다”며 “특정인의 의사가 표시되지 않았다는 점만을 들어 전자기록 등에서 제외한 원심의 판단은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봉함 기타 비밀장치가 돼 있지 않은 것은 전자기록 등 내용탐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A 씨의 일부 혐의가 무죄인 것은 맞는다고 판시했다. 전자기록 등 내용탐지죄의 전제조건은 비밀장치(피해자의 보안장치)와 기술적 수단(A 씨의 해킹프로그램)인데, B 씨의 노트북에 비밀장치가 없었으니 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머지 혐의들에 대해 2심이 내린 유죄 판결은 검찰과 A 씨 측 모두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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