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옛날 일이라더니… 해군 일병, 가혹행위에 극단선택

  • 동아닷컴
  • 입력 2021년 9월 7일 13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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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은 방치 의혹

해군 3함대 강감찬함 소속 일병이 선임병들에 가혹행위를 당했으나 가해자와의 분리 등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7일 군인권센터는 기자회견을 열고 “해군 강감찬함에서 선임병 등으로부터 구타, 폭언, 집단따돌림을 겪은 정모 일병이 휴가 중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지난 6월 세상을 떠났다”며 “함장, 부장 등 간부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도 피해자 보호, 구제 조처를 하지 않아 사실상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센터에 따르면 정 일병은 지난해 11월 어학병으로 해군에 입대해 올 2월 강감찬함에 배속됐다. 전입 열흘 뒤 정 일병은 사고를 당한 부친의 간호를 위해 2주 동안 청원 휴가를 받아 집과 병원을 오가며 아버지를 간호했다.

지난 2월 25일 부대에 복귀한 정 일병은 3월 9일까지 2주간 격리됐고 그때부터 선임병들은 정 일병에게 “꿀 빨고 있다”, “신의 자식이다” 등 말을 하며 대놓고 따돌렸다고 한다.

또 정 일병이 갑판 근무 중 실수를 하자 선임병 2명이 가슴과 머리를 밀쳐 넘어뜨렸다. 정 일병이 “제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묻자 이들은 “그냥 죽어버려라”라고 하는 등 구타와 폭언을 일삼았다고 한다.

센터는 “정 일병은 3월 16일 휴대전화 메신저로 함장에게 선임병들의 폭행·폭언을 신고하고 비밀 유지를 요청했다. 하지만 함장은 피해자를 선임병들로부터 분리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정 일병이 배 안에서 자해 시도까지 했지만 함장은 “가해자들을 불러 사과받는 자리를 갖는 게 어떻겠냐”며 선임병들과 마주 앉게 했다고 한다. 가해자들은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고 다시 정 일병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후 정 일병은 구토·과호흡 등 공황장애 증상을 보이고 친구들에게 ‘약이 없으면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갈 수 없다’, ‘미쳐가고 있다’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센터에 따르면 함장은 4월 6일이 돼서야 정 일병을 하선 시켜 민간 병원에 위탁 진료를 보냈다. 정 일병은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6월 8일 퇴원했고 약 한 달간의 휴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 일병은 이후에도 가족과 친구들에게 ‘낙오자가 됐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결국에는 지난 6월 18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에서 묘사된 군내 가혹행위 등에 대해 ‘과거의 일’로 치부한 바 있다. 문홍식 국방부 부대변인은 6일 “지금까지 국방부와 각 군에서는 폭행, 가혹행위 등 병영 부조리를 근절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병영혁신 노력을 기울여왔다”라며 “일과 이후 휴대전화 사용 등으로 악성 사고가 은폐될 수 없는 병영환경으로 현재 바뀌어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군에 이어 해군까지 가혹행위가 연이어 터지자 국민들은 “D.P.에서 그려진 일들이 아직도 벌어지고 있다는 게 현실”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정 일병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명백한 군의 책임”이라며 “정 일병은 살기 위해 여러 차례 함장 등 지휘관에 SOS 요청을 보냈지만 이들은 잡음 없이 사건을 묻고 가기 위해 가해자들도 방치했다”라고 주장했다.

또 “매번 군에서 사람이 죽을 때마다 어떻게든 사건을 무마, 은폐해 책임질 사람을 줄여보려는 군의 특성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라며 “달마다 같은 패턴으로 장병의 죽음을 대하는 군의 태도를 보며 분노와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고 비판했다.

두가온 동아닷컴 기자 ggg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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