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무책임이 개를 늑대로 만들었다

  • 뉴시스
  • 입력 2021년 6월 2일 11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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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50대 여성, 개에 물려 사망
대구시 달서구 차우차우·말리누아 반려견, 길고양이 잇따라 사냥
"인간의 무책임이 일깨운 공격성, 결국 인간 향하다"

대구시 수성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53·여)씨는 개를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찻길로 내려설 정도로 극도의 공포에 떤다. 개의 종자와 크기에 상관없다. 아무리 작은 개여도 맞닥뜨리기만 하면 오금이 저린다. 이씨의 오른쪽 얼굴과 어깨, 손등에 남은 흉터를 보면 이해할 수 있는 트라우마다.

초등학생 때 또래보다 몸집이 작았던 이씨는 하굣길에 돌아다니던 개와 마주쳤다. 두려움에 휩싸인 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집이 큰 그 개에게 당해 결국 큰 상처를 입었다.

아이와 함께 간식을 사러 집 앞 슈퍼마켓을 가던 박모(44·여)씨는 유기견이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을 느꼈다. 덩치가 큰 떠돌이개는 이들이 자기를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아챈 듯 박씨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가게를 나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쫓아왔다. 개는 결국 아이의 엉덩이와 등을 물었고 말리던 박씨도 팔과 다리를 물렸다. 근처에 있던 학생들이 119에 신고했고 개는 유기견 보호소에 맡겨졌다.

주인이 없는 들개들이 길고양이를 쫓다가 차량을 할퀴고 물어뜯는가 하면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5년간 개 물림 사고로 119에 이송된 경우만 2000건이 넘는다. 지난달 22일 경기도 남양주시에서는 산책하던 50대 여성이 대형견에게 물려 사망했다.

이러한 개 물림 사고는 인간의 무책임이 낳은 불가피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 방치돼 사육되는 과정에서 깨어난 공격성이 인간을 향한다는 경고다.

대구에서는 최근 주인이 있는 반려견들이 길고양이를 습격해 물어죽이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목줄을 채우지 않았거나 목줄을 바닥에 끌고 다니게 하는 등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벌어진 사건이다. 반려인에게 관리의무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고양이나 다른 동물은 물론, 어린이·여성·노약자에 대한 공격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라지다시피 억눌려 온 수렵본능을 통제하지 못한 주인들, 결국 인간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박순석 대한수의사회 동물의료복지특별위원장은 “주인이 잘 다루더라도 노약자나 어린이 등을 보면 호전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견종이 있다. 내가 밥 주는 개들이 꼬리를 흔들고 반긴다고 항상 착하다고 느끼면 안 된다. ‘실수’는 곧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자신이 키우는 견종의 기질을 분명히 알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반려인에게도 반려인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목줄이나 인식표,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안아주기 정도의 펫티켓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개의 품종과 크기에 따라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대형견은 반드시 건장한 체구의 성인 남성이 동반해 산책하도록 규정한 국가들도 많다. 순식간에 빚어지는 돌발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입마개는 물론 허리에 부착해 이탈을 방지하는 이중 안전줄도 채워야 한다.

맹견으로 분류된 5종에게만 의무화된 입마개 착용도 현실적이지 못하다. “고양이나 약자들에 대한 물림 사고가 맹견이 아닌 견종들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침이 보다 폭넓고 세분돼야 한다. 반려인에 대한 교육과 강제처벌 규정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구=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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