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의 탄자니아 아이들 가르치는 ‘디지털 교육 기술의 마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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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기반 학습용 소프트웨어로 교육격차 해소하는 기업 ‘에누마’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한 마을에서 어린이가 태블릿PC를 이용해 ‘에누마’의 교육용 소프트웨어로 공부하고 있다. 에누마 제공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한 마을에서 어린이가 태블릿PC를 이용해 ‘에누마’의 교육용 소프트웨어로 공부하고 있다. 에누마 제공
아프리카 오지에서 옆에서 가르쳐 주는 사람 없이 아이 혼자 글자를 깨치는 게 가능할까? 교사든, 부모든 누군가 차근차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어야 아이들의 글자 학습이 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이런 생각과 달리 오로지 ‘태블릿 소프트웨어’만으로 아프리카 탄자니아 아이들에게 읽기, 쓰기, 셈하기를 가르치는 데 성공한 회사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에듀테크 업체 ‘에누마’의 이야기다. 이 회사를 창업한 이는 한국의 게임회사 출신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이수인 대표(44)다. 20일 미국에 체류 중인 그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 스스로 학습, 게임처럼 즐겁게

엔씨소프트 출신인 이 대표는 같은 직장 동료였던 남편 이건호 씨와 2012년 캘리포니아에서 에누마를 창업했다. 공학도 출신인 남편 이 씨는 에누마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다. 남편의 유학으로 미국행에 올랐던 이 대표가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남다르다.

“미국에서 첫째를 낳고서 의사로부터 ‘아이가 몸이 좋지 않아 학습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내 자녀와 같은 상황에 놓인 아이들도 스스로 학습을 즐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을 더 잘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학습 환경이 안 좋거나 학습 속도가 느린 학생들을 위한 해결책은 별로 없다. 이 대표는 그런 아이들도 혼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꿈을 품게 됐다.

누구나 쉽게 배우려면 우선 재미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대표는 학습에 게임적 요소를 적용하기로 했다. 게임회사에서 쌓은 내공이 개발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 많은 연구를 거쳐 창업 1년 만에 출시한 어린이용 학습 앱 ‘토도수학’은 대박이 났다. 단숨에 전 세계 20개 나라에서 애플 앱스토어 교육 부문 1위에 오른 것이다. 이후 에누마는 종합교육 솔루션인 ‘킷킷스쿨’, ‘토도영어’ 등도 연달아 만들어냈다.

○ 일론 머스크가 인정한 에듀테크
에누마는 영리기업이지만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벤처의 성격도 띠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결과가 지난해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서 대상을 거머쥔 것이다. 2014년 비영리단체 엑스프라이즈재단은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쾌척한 1500만 달러(약 170억 원) 규모의 상금을 걸고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교사와 학교가 부족한 환경의 아이들이 스스로 읽기, 쓰기, 셈하기를 배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팀이 우승하는 대회였다.

세계 최대 규모의 비영리 벤처재단 ‘엑스프라이즈’가 지난해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시상식’에서 우승팀에 시상하는 모습. 대회를 주최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왼쪽에서 세 번째)와 공동 우승팀으로 선정된 ‘에누마’의 이수인 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 이건호 최고기술책임자(왼쪽에서 두 번째)가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에누마 제공
세계 최대 규모의 비영리 벤처재단 ‘엑스프라이즈’가 지난해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시상식’에서 우승팀에 시상하는 모습. 대회를 주최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왼쪽에서 세 번째)와 공동 우승팀으로 선정된 ‘에누마’의 이수인 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 이건호 최고기술책임자(왼쪽에서 두 번째)가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에누마 제공
당시 이 대표는 새로운 고민에 빠져 있었다. 교육 격차 해소에 쓰일 거라 믿었던 에듀테크가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쓰이기보다는 기기를 살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 자녀에게 조기 교육을 하는 데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던 차에 교사도, 학교도 없는 오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소프트웨어를 겨루는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가를 결심했다.

대회 프로젝트 기간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2017년에 결선 진출 다섯 팀을 뽑고, 그해 12월부터 2019년 3월까지 탄자니아 170개 마을의 문맹 아이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거쳐 최종 우승자를 뽑는 대장정이었다.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책을 구경도 못 해본 아이들에게는 ‘책을 읽을 땐 왼쪽 상단부터 시작해 오른쪽 하단으로 시선을 움직인다’는 게 상식이 아니었다. 공교육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진 국가에서 증명된 학습이론들이 통하지 않는 지점들도 많았다.

어려움이 따랐지만 이 대표는 ‘태블릿 소프트웨어만으로 학습이 가능하다는 걸 증명한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버텼다. 그 뜻에 공감한 국내외 벤처투자사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도 힘을 보탰다. 결국 2019년 5월 최종 시상식에서 에누마는 공동 우승팀으로 뽑혔다. 이후 에누마는 방글라데시로 이주한 로힝야족 난민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등 도전을 이어오고 있다.

○ 코로나19 속에 주목받는 회사
요즘 이 대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학습 수요가 늘면서 회사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4배 정도 뛰었다.

예상치 못한 전염병 대유행 사태 속에서 이 대표는 에누마의 역할을 다시 정리하게 됐다고 밝혔다. 기존에 잘 작동되는 교육 시스템을 더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장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에누마의 소프트웨어가 활용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한 한국어 문해교육 앱을 개발한 것도 그런 취지다.

이 대표는 최근 세계경제포럼(WEF) 산하 사회적기업 육성 글로벌 재단인 슈와브재단이 뽑는 2020년 사회적기업가로 선정됐다. 앞서 2017년에는 사회혁신가들의 네트워크인 아쇼카 펠로로도 뽑혔다. 학습이 어려운 사람들의 교육 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인정받은 결과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좋은 학교와 열악한 학교 사이엔 약 100년의 격차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대표는 “코로나19 위기 속에 이 차이가 더 벌어질지 줄어들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에누마가 그 격차를 좁히는 데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에누마#디지털 교육 기술#에듀 테크#태블릿 소프트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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