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호소에도 “예뻐서 그랬겠지…동료들 은폐·왜곡 가담” 주장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2일 1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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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알고 있는 20명의 동료들이 (사건을) 은폐·왜곡하는 데 가담하고 있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을 고소한 피해자가 수년 간 주변 서울시 관계자들에게 피해를 호소했지만 해당 직원들이 이를 방조·묵인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시 청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22일 기각됐다. 하지만 시 관계자들의 방조 정황이 추가로 드러난 만큼 경찰의 강제 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 피해 호소에 “예뻐서 그랬겠지” 반응

이날 피해자 A 씨 측의 기자회견에는 서울시 직원들이 피해에 대해 적극적인 조치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A 씨를 설득 회유하려는 행태가 그대로 드러났다. A 씨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에 따르면 A 씨는 자신이 입은 피해를 인사담당자에게 전하고 직장 동료에겐 박 전 시장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문자와 속옷사진까지 보여줬다고 한다.

하지만 해당 직원들은 “(네가) 예뻐서 그랬겠지” “뭘 몰라서 그래” 등 오히려 박 전 시장을 두둔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정신적 고통 등을 이유로 부서 이동을 요구했던 A 씨에게 “(성추행의 주체인) 시장에게 직접 허락 받으라”고 답한 상급자도 있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성 고충 등을 호소했는데도 피해자의 전보 등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아 A 씨가 지속적으로 추행 피해에 노출되도록 만들었다”며 “(관련자들에 대한) 추행 방조혐의 인정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박 전 시장의 전현직 비서실장들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역대 비서실장들은 이상한 낌새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고 다들 주장한다”면서 “4년 동안 지속된 성적 괴롭힘을 몰랐다는 것 자체가 더 큰 문제”라 지적했다. 김 부소장은 이어 “피해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댓글이 아니라 4년 간 헌신적으로 일했던 조직과 이 사건을 아는 20여 명 동료들의 은폐·왜곡”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비서실장 A 씨를 포함해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자 측이 언급한 20명의 서울시 관계자 명단을 이날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 경찰 압수수색 영장 또 기각

피해자 측이 추가 폭로와 함께 경찰 등의 적극적인 수사를 요청했지만,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은 또 다시 기각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는 22일 “서울시청 등에 대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이 ‘필요성 부족’ 등의 이유로 기각됐다”고 밝혔다. 해당 영장에는 박 전 시장의 다른 휴대전화 압수수색에 대한 내용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영장심사를 한 서울중앙지법은 “(성추행을 방조한 직원 등) 피의자들에 대한 범죄혐의사실의 소명이 부족하고, 범죄혐의사실과 압수수색할 물건과의 관련성 등 압수수색의 필요성에 대한 소명도 부족하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법원은 범죄혐의 소명과 관련해 서울시 직원 중 누가 어떤 방법으로 성추행 피해를 방조했는지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다고 봤다.

17일 신청한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에 대한 통신영장 기각에 이어 또 다시 관련 영장이 기각되며 경찰 수사는 제동이 걸렸다. 기각 사유가 ‘필요성 부족’ ‘소명 부족’ 등으로 밝혀지며 경찰이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부실한 영장을 신청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피해자 측은 서울시가 구성하는 진상조사위원회 불참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조만간 국가인권위에 직접 진정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서울시 자체 조사가 아니라 외부 국가기관이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인권위가 조사를 진행하는 게 최선이라고 본다”고 했다.

강승현기자 byhuman@donga.com
김소영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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