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반도체 부품업체 ‘혈액암 사망’ 노동자 산재 인정

  • 뉴시스
  • 입력 2020년 6월 4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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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물질 노출 가능성"…산재승인 받을 수 있어

반도체 관련 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혈액암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가 해당 사업장에서 사용한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인정돼 산업재해 승인을 받을 수 있게 됐다.

4일 반도체 노동자 인권단체 ‘반올림’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29일 혈액암으로 숨진 A씨(사망 당시 만52세) 유족이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산재 불승인 처분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다.

이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승인하면 A씨 유족은 앞서 청구한 유족 급여와 장의비 등을 지급받게 된다. 다만 공단이 항소할 경우 상급 법원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

2011년 3월부터 반도체 부품업체에서 일한 A씨는 2014년 8월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이후 곧바로 수술을 받았으나 보름 만인 그 해 9월 사망했다. A씨는 평소 흡연과 음주를 하지 않았고 건강에도 이상이 없었다.

A씨 유족은 이듬해인 10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A씨가 담당한 ‘펀칭’ 공정이 화학물질을 취급하지 않았고, 인근 공정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노출됐더라도 기간이 짧고 역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산재 승인을 거부했다.

이에 A씨 유족은 2018년 7월 공단의 처분 취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29일 A씨 유족의 청구를 인용했다. A씨가 사망한 지 6년 만에 승소 판결을 받은 것이다.

법원은 A씨가 담당한 펀칭 공정 전후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펀칭 공정은 이전 공정에서 만들어진 제품에 구멍을 뚫는 작업이어서 이전 공정에서 나온 유해물질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데다 공기를 재순환하는 해당 작업장 특성상 다른 공정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이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올림은 “A씨의 경우 유해물질과 혈액암의 관계가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 주요 불승인 사유였다”며 “이렇게 피해자가 도저히 입증할 수 없는 기준이 적용되면 많은 피해자들이 산재 보상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산재보험의 취지에 맞지 않는 일”이라며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판단 과정에서 적용되는 것은 과학적 인과 관계가 아니라 법적, 규범적 인과 관계라는 것을 원칙으로 확인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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