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열면 불법, 닫으면 코로나19”…유통업계 ‘에어컨’ 딜레마

  • 뉴스1
  • 입력 2020년 5월 11일 06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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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대형 가전제품 매장에 에어컨이 진열돼있다. 2020.3.23 © News1
서울 시내의 한 대형 가전제품 매장에 에어컨이 진열돼있다. 2020.3.23 © News1
“문 열면 단속에 걸리고, 닫자니 혹시나 코로나19가 확산되지 않을까 걱정되고….”

유통업계가 본격적인 무더위를 앞두고 ‘에어컨 딜레마’에 빠졌다. ‘에어컨을 켜면 코로나19 전파력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큰 상황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지침이 없는 상황이다. 방역당국은 에어컨 가동시 “수시로 환기를 하라”고 권고했지만 현행법상 ‘개문냉방’(開門冷房) 영업은 불법이다.

정부는 여름철 학교에서 에어컨을 사용할 때 창문을 열도록 가이드라인을 정했지만, 사무실이나 백화점, 로드숍 등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지침을 내놓지 않았다. 냉방과 환기를 동시에 할 경우 날아올 ‘전기요금 폭탄’도 고민거리다.

전문가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에어컨 바람을 타고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며 “제2의 집단감염을 예방하고 혼란을 방지하려면 한시적으로 개문냉방 단속을 유예하는 등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 열자니 단속 위험, 닫으면 감염 우려”…‘개문냉방’ 딜레마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백화점·대형마트·로드숍·카페 등 오프라인 유통채널들은 평년보다 빨리 찾아온 더위에 일제히 ‘하절기 매장 운영’에 돌입했다. 하지만 에어컨 등 냉방기기 가동은 상당수가 망설이고 있다. 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자니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있고, 문을 열자니 과태료를 물 수 있는 ‘딜레마’ 때문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난 6일 에어컨 사용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수시로 환기하면서 에어컨을 사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냉방 중인 실내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최대 5일간 생존할 수 있다는 발표까지 나온 상황이어서 환기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문제는 창문이나 현관문을 연 채 에어컨을 켜는 ‘개문냉방’은 현행법상 불법이라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따라 문을 열고 냉방영업을 하는 행위를 단속하고 있다. 적발 시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전력 수급에 차질이 우려될 때만 단속이 시행되지만 ‘폐문냉방’은 업계 불문율이다.

교육부는 교내에서 에어컨을 사용할 때 창문을 3분의 1 이상 열도록 지침을 정했다. 하지만 일반 다중이용시설에 대해서는 마땅한 가이드라인이 없어서 혼란이 예고됐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당장 에어컨을 켜야 할 판국에 정부의 권고와 법이 충돌하는 상황”이라며 “운영 방침을 마련하고 있지만 소비자의 안전과 편의가 달려있어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다른 가전매장 관계자도 “에어컨을 판매하면서 정작 매장은 찜통인 모순이 벌어질 수 있다”며 “과태료 감수하고라도 개문냉방을 해야겠지만 그 전에 지침이 나오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나”고 쓴웃음을 지었다.

◇‘전기요금 폭탄’도 고민거리…전문가 “정부 대책 마련해야”

개문냉방으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도 숨은 복병이다. 냉방과 환기를 동시에 할 경우 전력 사용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공조 시스템을 갖춘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대표적이다. 고층빌딩과 다중이용시설은 대부분 실내 공기를 환기하는 공조 시스템이 있지만 에어컨을 가동할 땐 공조 시스템을 끄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부 공기를 배출하고 외부 공기를 유입하는 과정에서 더운 바람이 들어와 냉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에어컨과 공조 시스템을 함께 가동하면 전력 사용량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며 “실내 방역이 효과를 보려면 한시적으로 전기요금을 감면하는 조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에어컨을 켜고 환기를 하지 않으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질 수 있다”며 “정부와 방역당국이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에어컨은 공기의 유동(流動)을 일으키기 때문에 실내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있으면 모든 사람이 감염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에어컨은 공기를 빨아들여 냉각한 뒤 다시 뿜어내는 원리로 작동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에어컨을 통해 퍼지거나 바람을 타게 되면 확산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이 경우 2m든 3m든 거리두기를 하는 의미가 무색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환기를 하지 않고 에어컨을 켜면 코로나19가 확산할 수 있다”고 분석하면서 “코로나19가 종식되거나 백신이 나올 때까지는 개문냉방을 하더라도 단속을 유예하는 등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에어컨이 켜진 실내에서는 꼭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가능성과 전력수급 상황 등을 따져본 뒤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교실과 상점의 실내 환경과 전력수급 운영을 살펴보고 있다”며 “코로나19 확산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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