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강처녀·어머님은혜’…저작권 탓 법정 간 노래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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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2월 14일 14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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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처녀상과 소양강 스카이워크 풍경
소양강처녀상과 소양강 스카이워크 풍경
지역 명소라고 소문이 난 곳을 가면 그 지역을 다룬 대중가요의 노랫말이 적힌 노래비를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강원도 춘천시의 소양강처녀 노래비다. ‘소양강 처녀상’과 함께 세워진 이 노래비는 이 일대를 관광명소로 만들었고 대표적인 춘천의 상징조형물로 자리잡았다. 지역명물이 아니더라도 학교에서도, 지역 공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노래비였다.

그런데 소양강처녀 노래비를 비롯해 전국의 노래비들이 송사에 휘말리고 있다.

◇반야월 선생 유족, 전국에 있는 노래비들 상대 소송전(戰)

지난 2016년 2월 대중가요 ‘소양강 처녀’ 작사가인 고(故) 반야월 선생의 유족이 춘천시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반야월 선생의 3녀이자 선생의 모든 음악저작권을 상속받은 박모씨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소양강처녀 노래비에 사용했다”며 1억4250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낸 것이다.

반면 춘천시는 “2005년 3월 반야월 선생이 소양강 처녀 노래비 제작 등 관광명소화 사업 운영에 ‘소양강 처녀’를 공익 목적으로 사용함에 이의없이 승낙한다는 승낙서를 작성해줬다”고 맞섰다.

또 박씨는 경남 사천시와 태안군, 제천시, 서울 금천구·성북구, 한국수자원공사를 상대로 총 1억425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사천시는 서금동 노산공원에 ‘삼천포 아가씨 노래비’를, 태안군은 만리포해수욕장 입구에 ‘만리포사랑 노래비’, 제천시는 금천체육공원에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비’, 성북구는 미아리고개 정상에 ‘단장의 미아리 고개 노래비’를 설치했다. 수자원공사는 물문화관 앞 댐 사면에 추락방지를 위해 설치한 유리난간에 ‘소양강 처녀’ 가사를 적었다.

이 노래비 등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박씨는 소송을 낸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박씨의 청구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8부(부장판사 황기선)는 지난 4월 박씨가 춘천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반야월 선생이 노래비 제작에 동의했고, 이를 상속인이 특별한 사정 없이 임의로 철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지난 8월 14일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돼 판결이 확정됐다.

또 서울중앙지법 민사208단독 안성준 부장판사는 박씨가 사천시 등 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도 지난 5월 원고패소 판결했다.

안 부장판사는 “반야월 선생과 박씨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저작물을 신탁했는데, 수탁자만이 권리 침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위탁자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며 “위탁자인 박씨는 소송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박씨가 항소해 현재 2심 재판이 진행중이다.

◇‘어머님 은혜’·‘어머니의 마음’도 法 판단 기다려

어버이날 가장 많이 불리는 곡으로 유명한 동요 ‘어머님 은혜’와 가곡 ‘어머니의 마음’도 소송에 휘말렸다. 두 노래 가사에 대한 저작권을 가지고 있던 김모씨는 2016년 6월 재단법인 기독교서산제일감리교회와 학교법인 중동학원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다.

기독교서산제일감리교회는 2014년 9월 교회 근처에 있는 공익카페 앞에 ‘어머님 은혜’의 작사가이자 이 교회 담임목사였던 윤모씨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어머님 은혜’ 가사를 적은 노래비를 제작했다. 중동학원은 2001년 중동고에 ‘어머니의 마음’ 가사를 적은 노래비를 만들었다.

김씨는 “어문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각각 1500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교회 측은 “백방으로 수소문해 연락이 된 유족으로부터 저작권이 타인에게 양도된 사실이 없음을 확인했다”며 “또 유족에게 노래비 제작에 대한 승낙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도 “원 저작자는 학교 졸업생으로 영어교사로도 일한 적이 있는데, 졸업생들이 원 저작자를 기리기 위해 저작권을 상속한 원 저작자의 자제로부터 사용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2017년 8월 교회에게는 400만원, 중동학원에는 300만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교회 측이 원 저작자의 유족에게 문의해 저작권 등록을 한 바 없음에 대한 확인을 받고 사용 승낙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설사 승낙을 받았더라도 그런 사정만으로 이 같은 과실(사용 승낙을 받지 않은 점)의 추정이 번복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해당 가사가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소주제로 삼아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서, 가사가 가지는 어문 저작물로서의 독립성과 개성이 강하다고 판단했다.

중동학원 측은 해당 노래비가 학생들의 정서와 효심 함양을 위한 교육 목적으로 설치된 것으로 저작권법에서 정한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한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법 제25조 2항은 ‘교육기관이 수업 또는 수업지원 목적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공표된 저작물의 일부분을 복제ㆍ배포ㆍ공연ㆍ전시 또는 공중송신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노래비 설치와 위치 등을 보면 학생들의 정서 순화나 효심 함양 등도 목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저작권법에서 정하는 저작재산권 제한사유로서의 학교교육목적 등 이용에 해당하려면 수업 목적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공표된 저작물의 일부분을 복제 등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처럼 학교 담장 밖에 노래비를 설치한 것을 수업 목적상 필요한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2심도 1심 판단이 옳다고 봐 피고들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 판결에 대해 교회와 학교 측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지난 4월 확정됐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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