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에 발포명령자 물었던 정상용, “왜 이래” 발언 듣고…

  • 뉴스1
  • 입력 2019년 3월 12일 13시 24분


코멘트

‘광주 5·18 재판’ 전두환 뻔뻔한 모습에 시민분노
전씨 비호세력도 80년 광주 살았다면 저항했을 것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광주 동구 지산동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전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9.3.11/뉴스1 © News1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광주 동구 지산동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전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9.3.11/뉴스1 © News1


지난 1988년 국회 5공 비리 청문회에서 전두환씨(88)에게 “발포명령자를 밝혀라”고 외쳤던 정상용 전 국회의원(70)은 전씨의 ‘광주 5·18 재판’ 출석에 대해 “안타깝다”고 표현했다.

정 전 의원은 12일 뉴스1과 통화에서 “어제 재판정에는 가지 않았지만, 실시간 뉴스로 전두환씨 광주 도착이나 재판 상황 등을 지켜봤다”며 “예상했던 대로 전씨가 본인이 저지른 일에 대해 죄의식을 못 느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 시민들은 처음에는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지켜봤다”면서 “하지만 재판이 끝나고도 잘못한 게 없다는 전씨의 태도에 시민들이 분노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전씨는 11일 재판이 끝난 뒤 분노한 광주시민들에게 가로막혀 오도가도 못하다가 경찰이 투입되고서야 40여분만에 가까스로 법원을 나설 수 있었다.

그는 “전씨를 비롯한 신군부 세력 때문에 불행한 일이 일어나 많은 시민이 죽고 다치고 구속되고,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데, 39년이 지난 지금도 사죄를 안하는 것을 보고 ‘인간으로서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분노가 치밀었다”고 혀를 찼다.

그러면서 “어제 광주에 와서 사죄한다고 한 마디만 했다면 광주 시민들은 용서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며 “그런 기회를 놓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부끄럽다”고 토로했다.

정상용 전 국회의원  © News1
정상용 전 국회의원 © News1
또한 “대한민국이 과거 역사적 과오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철저히 심판해 사회정의가 실현됐다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 의원은 “우리가 일제 식민지를 지내고 나서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해 지금까지 이런 일이 계속 되고 있다”며 “전씨도 내란죄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사면되는 바람에 가해자인데도 불구하고 떵떵거리고 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앞으로 전씨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은 헬기사격 여부를 놓고 공방이 계속 벌어질 것이지만, 그럴수록 많은 피해자들에게 더 큰 상처를 안긴다”면서 “이번 계기를 통해 죄를 저지를 사람을 철저히 처벌하는 사회풍토가 조성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학살을 저지른 전씨 같은 사람을 용서할 수 없지만 전씨를 비호하는 일부세력들은 더 용서할 수 없다”며 “더 가증스럽고 같은 국민으로 산다는 게 부끄럽다”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전씨를 두둔한 사람들도 80년 당시 광주에 살았다면 똑같이 총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항했을 것이라 믿는다”며 “정치권도 이런 문제는 여야를 떠나 역사적 규명에 동참해야 한다”고 일침했다.

한편, 정 전 의원은 지난 1980년 5·18 당시 외무위원장으로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렀다. 이후 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 회장, 5·18민중항쟁동지회 회장 등을 지냈다.

1988년과 1992년에는 광주 서구에서 총선에 출마 제13대, 14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광주=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