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이나 걸릴 줄 몰랐다”…법정에 선 4·3수형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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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0월 29일 16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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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내란실행·국방경비법 위반 군법재판 재심 개시

29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4·3 수형 생존자 오희춘 할머니(85)가 70년 만에 열리는 군사재판 재심 첫 공판을 앞두고 감회를 밝히고 있다. 2018.10.29/뉴스1 © News1
29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4·3 수형 생존자 오희춘 할머니(85)가 70년 만에 열리는 군사재판 재심 첫 공판을 앞두고 감회를 밝히고 있다. 2018.10.29/뉴스1 © News1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70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네요.”

29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만난 4·3 수형 생존자 오희춘 할머니(85)는 70년 만에 열리는 군사재판 재심 첫 공판을 앞두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오 할머니를 비롯해 80~90대로 이뤄진 수형생존인 18명은 성명불상의 군인들과 경찰에 의해 체포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지난해 4월 19일 대한민국을 상대로 내란실행·국방경비법 위반 등에 대한 재심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1948년 가을부터 1949년 여름 사이 군·경에 의해 제주도 내 수용시설에 구금돼 있다가 육지의 교도소로 이송된 뒤 최소 1년에서 최대 20년간 수형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구금된 근거를 유추할 수 있는 기록으로는 1949년 12월과 1949년 7월에 작성된 수형인 명부, 범죄·수사경력회보 내지 군집행지휘서, 감형장 등만 있을 뿐 공소장이나 공판기록, 판결문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게 이들이 엉터리 처형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였다.

고심하던 재판부는 소송을 제기한 지 1년6개월 만인 지난 9월 이들의 청구를 받아들였고, 제주지방검찰청이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항고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정식 재판이 이뤄지게 됐다.

70년 만에 족쇄를 풀기 위한 재판이 이뤄지게 됐지만 18명 중 정기성 할아버지(96)와 박순석 할머니(90) 등 2명은 병원에 입원해 나오지 못했다.

4·3 수형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억울하게 살아왔다는 현창용 할아버지(86)는 “감옥살이도 하고 총도 맞았는데 어떻게 오늘날까지 살아왔다”며 “함께 재판을 하는 동료들에게 이 재판이 끝날 때까지 아프지 말고 살자고 말했다”고 말했다.

29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제주4·3 수형 생존자들이 70년 만에 열리는 군사재판 재심 첫 공판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18.10.29/뉴스1 © News1
29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제주4·3 수형 생존자들이 70년 만에 열리는 군사재판 재심 첫 공판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18.10.29/뉴스1 © News1

재심 청구 과정에서 심리를 받기 위해 여러 차례 법원을 찾은 김평국 할머니(88)는 “늙은 사람들이 모이는 게 참 힘든데 꼭 참석하려고 노력했다”면서 “죄를 알고 맞았으면 덜 아팠을텐데 죄명도 모른 채 맞으니 더 아팠다”고 수용생활을 떠올렸다.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대표는 “이제 4·3 진상규명을 위해 첫 걸음을 뗐다”며 “이번 재심 재판에서 70년 천추의 한이 풀어지는 역사적인 그날을 기대한다. 늦지 않도록 조속한 판결을 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변호를 맡고 있는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재심에서 중요한 건 피고인이라 명명된 18명의 범죄 사실을 검사가 특정해야 하는데 이분들이 어떤 범죄를 지었는 지 기록이 없다”며 “아마 재판이 길지 않을 거고 분위기상 검사가 항소나 상고할 것 같지 않아 18명의 명예회복이 확정판결로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18명에 대한 재판은 이날 오후 4시부터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제2재판부(재판장 제갈창)가 맡아 속행 중이다.

(제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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