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지문 일치 용의자 1·2심 무죄…살인범은 따로 있나?

  • 뉴스1
  • 입력 2018년 10월 27일 0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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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쪽지문만으로 유죄 입증 어려워…다른 경로 통해 왔을 수도”
검찰, 29일 상고심의위 열어 상고여부 결정…“뒤집기 어려워”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결정적 단서 쪽지문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결정적 단서 쪽지문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쪽지문(지문의 일부분). 이 쪽지문과 일치한 정모씨(52)가 범인일까. 아니면 그 쪽지문은 다른 경로에 의해 우연히 범행 현장에 오게 됐을까.

13년전인 2005년 5월 13일 강릉시 구정면 덕현리의 한 시골마을.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골마을 한 주택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안방에서 발견된 B씨(당시 69세·여)의 얼굴은 박스 테이프로 칭칭 감겨있었고, 양 손은 전화선으로 묶여 결박된 상태였다. 이미 숨진 뒤였다.

B씨의 왼손 약지에 끼여 있던 금반지와 오른손 팔목을 감고 있던 팔찌가 없어졌다. 장롱은 모두 열려 있었고 집은 어지럽혀져 있었다.

누군가가 침입해 B씨를 살해하고 78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아 달아나는 끔찍한 사건을 벌인 것이다.
지난해 미제사건 수사팀장이 박스 테이프 사용 재연모습
지난해 미제사건 수사팀장이 박스 테이프 사용 재연모습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B씨의 얼굴을 감는데 사용한 박스테이프와 피해자 의류 등 중요 증거물을 분석해 용의자를 추적했지만 범인을 잡는데 실패했다.

경찰은 범행에 쓰인 박스테이프 속지에 묻은 지문에 관심을 가졌다. 그 지문은 범행 과정에서 묻은 용의자의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결정적 단서인 박스테이프 안쪽 속지에 묻어 있던 1cm 크기의 지문이 뚜렷하지 않아 용의자를 지목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장기미제 강력사건으로 남은 이 사건은 지문감식 기술의 발달로 새 국면을 맞았다.

경찰은 지난해 8월 31일 지문자동검색 시스템을 통해 용의자를 특정하고 정씨를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사건 12년만에 정씨는 1cm의 쪽지문 탓에 강릉 노파 살인사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정씨의 지문이 나온 사실 이외에도 과거 동일수법 범행 전력, 주변인 수사, 거짓말탐지기 검사, 현장 지리감 수사 등을 통해 정씨의 강도살인 범행을 자신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정씨는 지난해 12월15일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배심원 9명 중 8명도 무죄, 1명이 유죄로 평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공소사실과 같은 범행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구속됐던 정씨는 석방됐다.

이후 검찰은 정씨의 진술 분석, 심리 전문가 의견 등을 추가로 법원에 제출해 항소했다. 정씨가 범행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24일 열린 2심 재판부도 1심과 같은 이유를 들어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피고인의 쪽지문만으로는 유죄를 입증하기 어렵다”며 “원심 판단은 적법하다”며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2005년 발생해 지난 12년 간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강원도 강릉 노파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용의자가 범행에 사용한 포장용 테이프(왼쪽)와 전화선이 증거물로 남아있는 모습. (강원지방경찰청 제공) © News1
2005년 발생해 지난 12년 간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강원도 강릉 노파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용의자가 범행에 사용한 포장용 테이프(왼쪽)와 전화선이 증거물로 남아있는 모습. (강원지방경찰청 제공) © News1

증거로는 피고인의 지문이 묻은 노란색 박스 테이프가 유일하나 박스테이프가 불상의 경로에 의해 이 사건 범행 장소에서 발견됐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씨가 살인범이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가 정씨의 지문이 묻은 박스테이프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얘기도 있을 수 있다.

재판 후 정씨는 “사건 범행현장에 간 적도 없고, 피해자의 얼굴도 모른다”며 황급히 법원을 빠져 나갔다. 그는 자신의 지문과 일치한 쪽지문이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데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검찰은 29일 서울고검에서 상고심의위원회를 열어 상고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검찰은 1심과 2심에서의 무죄를 3심에서 뒤집는 사례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춘천=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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