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현대판 마녀사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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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을 비유하여 ‘마녀사냥’이라 합니다. 마녀사냥은 사실관계를 따져 묻기 전에 한 번 마녀라는 프레임에 걸리면 공동체에서 철저히 배제된다는 점에서 매우 무서운 현상입니다.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우려가 큰 집단적 따돌림인 것이죠.

마녀사냥의 원류는 중세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5세기 유럽 사회에서 기독교가 주도권을 잡으며 종교의 절대적 힘을 유지하기 위해 신에 대한 일체의 도전과 모독을 반역의 중죄로 다스렸습니다. 이교도를 제거하기 위한 희생양을 찾은 마녀사냥은 16, 17세기에 절정을 이룹니다. 독일,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국가에서 마녀로 몰린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배제되어 희생되었습니다.

마녀가 공동체를 파괴하는 악마 또는 사탄이라는 신념은 당시 지배계급이 만들어낸 일종의 사회적 산물입니다. 마녀사냥의 주된 대상은 홀로 된 여성이었습니다. 중세 신학적 관점에서 여성은 원죄로 각인되어 있는 존재이며 악마의 심부름꾼이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녀로 지목된 자들은 고문과 참수, 화형 등을 당했습니다. 기독교 이외의 어떤 종교도 허용될 수 없던 중세사회에서 체제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마녀라는 희생양을 통해 잠재웠던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마녀사냥을 통해 공동체가 안전하다는 느낌을 줌과 동시에 사회 통합을 이루고자 했던 겁니다.

마녀 재판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자취를 감췄습니다. 르네상스가 진전되고 이성적 세계관과 과학의 발전에 따라 마녀 재판의 존립 근거가 사라졌던 것이지요.

최근 신종 마녀사냥이 우리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아동학대 의심을 받던 어린이집 교사의 신상이 맘카페에서 털리고 마녀사냥 하듯 비난이 증폭되자 이를 견디지 못한 보육교사가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대중은 아동학대인지에 대한 사실 확인은 뒷전인 채 집단적 울분의 대상을 찾아 거침없이 돌을 던졌습니다.

홀어머니와 결혼을 눈앞에 둔 예비 신랑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사의 소식이 전해지자 이제는 그 맘카페가 또 다른 마녀가 되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맘카페 폐쇄를 원하는 청원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대중은 새로운 마녀를 찾고 있으며 마녀가 등장할 때마다 열광적인 침 뱉기를 하고 있습니다.

중세의 마녀사냥이 페스트, 종교전쟁 등으로 상처받은 공동체를 달래고 하나로 묶는 기제로 작동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각박해진 세태에 대한 하소연의 출구로 마녀를 찾아 나선 것은 아닌지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맘카페 사건은 우리의 씁쓸한 자화상입니다. 팩트를 찾기보다는 소위 ‘카더라’ 통신을 쉽게 믿어버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되돌아볼 때입니다. 익명성에 기대어 가려진 곳에서 허위 선동과 댓글 조작, 비난과 비방을 한 경험이 있다면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어떻게 자정을 할지 심각히 고민해야 합니다. 애초에 갖고 있던 정보 공유와 지역 주민 소통, 건전한 소비자 운동의 순기능을 살리면서 폐단은 고쳐야겠지요.

맘충(육아를 이유로 주변에 피해를 주는 엄마), 여성 혐오, 남성 혐오 등의 단어가 일상의 담론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마녀사냥에 동참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현대판 마녀사냥#맘카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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