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저유소 화재, ‘절묘한 삼박자’가 빚은 사고

  • 뉴시스
  • 입력 2018년 10월 9일 16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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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수사결과 발표로 대한송유관공사가 저유소 옆 잔디 화재를 18분간 발견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난데 이어 현장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안전 설비 부족 문제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9일 고양경찰서와 대한송유관공사에 따르면 경찰은 스리랑카인 A(27)씨가 300m 옆 공사장에서 띄워 보낸 풍등이 휘발유 저장탱크 옆에 추락해 잔디에 불이 옮겨 붙어 번지는 18분 동안 대한송유관공사 측이 화재 발생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했다.

송유관공사 측은 이날 언론 질의응답에서 자체 CCTV 분석을 통해 인지 가능한 수준의 연기가 발생해 폭발로 이어진 시간이 경찰 의견보다 10분 적은 8분 정도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가 되고 있는 풍등 화재 당시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에는 정문 경비원 2명과 통제실 직원 2명 등 총 4명이 근무 중이었다.

순찰을 맡고 있는 경비직원은 출입 통제가 목적이지만, 통제실에서 CCTV를 관제하는 직원들조차 저유소 옆 잔디가 타들어가고 있는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한 점에는 의문이 남는다.

저유소 내에는 고정형과 이동형 CCTV 수십 대가 설치돼 있으며, 이동형 CCTV는 20초 주기로 화면이 전환된다.

반면 사고 현장을 관찰할 수 있는 통제실 내부 관제 모니터는 20-30개의 CCTV가 한 화면에 분할돼 출력된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한 송유관공사 직원은 이 때문에 유심히 관찰하지 않는 이상 화재 발견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귀뜸했다.

과중한 업무도 화재를 발견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 됐다. 사고 당일 통제실 근무자 2명은 유류차량 출입과 반출, 각종 설비 조작과 CCTV 관제 업무를 맡아 처리했다.

하루에도 수 십대의 차량이 드나드는 현장을 관리하고, 기기를 조작하느라 CCTV를 지속적으로 관찰할 여유가 없었던 셈이다.

이와 함께 잔디 화재가 폭발로 이어지게 된 유증기 배출구와 화재 감지장비 등 허술한 설비도 사고를 키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저유소 저장탱크에 설치된 유증기 배출구에는 이물질 유입을 막기 위한 거름망만 설치돼 있어 불씨가 내부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경찰은 자연 배출식으로 설계된 개방형 유증기 배출구 근처까지 번진 불길이 배출구에서 나온 유증기와 만나 발화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송유관공사 측은 유증기를 외부로 배출하지 않고 태워 없애는 유증기 회수장치를 추가 설치하려면 저장탱크 1기당 17억원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대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잔디 발화를 발견하지 못한 주된 원인 중 하나인 외부 화재감지센서 부족 부분도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다.

사고가 발생한 휘발유 저장탱크 주변에는 총 14개의 유류 저장탱크가 몰려있지만, 외곽에 단 2개의 유증기 감지장치만 설치돼 있을 뿐 화염감지기 등 다른 화재 감지 수단은 없었다.

전문가들은 열 영상장비와 약간의 관제 프로그램만으로도 저유소 주변 화재 감지 시스템 개선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냈다.

송유관공사 측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시설 개선에 나설 방침이지만, 단시간에 시설 개선이 모두 이뤄지기는 힘든 실정이다.

대한송유관공사 관계자는 “이번 사고로 발견된 문제점을 분석하며 개선책을 찾고 있다”며 “이번 사고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이번 화재를 유발해 중실화 혐의로 입건된 스리랑카인 A씨에 대해 이날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고양=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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