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날’이지만…혐오·소외 속 노인을 위한 공간 어디에

  • 뉴시스
  • 입력 2018년 10월 2일 16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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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서 버스랑 지하철 타고 1시간30분 걸려서 여기까지 와요. 영감은 요양원에있고 자식들은 다 먼 데 살고. 집에 혼자 있으면 답답하고 있으면 쓸쓸하니까, 집 근처에 즐길 것도 없어서 뭐라도 하려고 나오는 거죠.”(83세 김옥화씨)

서울 종로구의 서울노인복지센터는 노인의 날인 2일에도 오전부터 붐비기 시작했다. 매일 3000여명의 노인들이 방문한다는 센터는 총 3층짜리 건물이다.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미술관, 컴퓨터교실, 영화관, 당구교실 등 층층마다 다양하게 구성됐다. 하지만 찾아오는 이들이 워낙 많아 공간이 모자란다.

센터 3층에는 세 명씩 앉을 수 있는 의자 10여개가 놓였으나 오전 10시부터 이미 꽉 차 있었다. ‘앉지 마시오’라고 적힌 히터 자리에조차 노인들이 모여들었다. 층을 오가는 계단에도 많은 노인이 신문을 깔고 쪼그려 앉아 책이나 신문을 읽었다. 허공을 보며 앉아있는 이들에게 무엇을 기다리는지 물어보니 “그냥 앉아있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전 11시부터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선다. 센터 측에 따르면 후원금 1000원을 내고 매일 식사를 배급 받는 노인이 2000여명에 달한다.

시간당 200명 정도가 방문한다는 서울 내 대규모 복지 센터. 센터를 나가 몇 걸음만 걸어도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인사동 거리와 각종 상점, 카페가 즐비하다. 하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노인들에겐 언감생심이다.

매일 센터에 나온다는 이종희(85)씨는 안산에서 일흔이 될 때까지 버스 사업을 하다가 그만뒀고 아내와 사별한 지도 18년이 됐다. 이씨는 “적적하니까 여기 와서 시간을 보내며 지낸다. 오전 8시30분에 여기 와서 오후 5시까지 있다가 집에 돌아가면 그 이후에는 별로 할 게 없다. 집에 가서 밤 9시까지 TV를 보다가 자는 것 뿐”이라고 토로했다.

센터 개관 후 18년째 오고 있다는 서인순(77)씨는 “다른 복지관은 교통도 불편하고 먹을 것도 (부담하기) 힘들어 동대문구에서 여기까지 멀지만 매일 온다”며 “자식들을 키울 땐 몰랐는데 사위와 며느리를 들이니 확실히 (대화에) 뒤처지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 와서 공부를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18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자는 738만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의 14.3%다. 그러나 정작 일상에서 노인들을 위한 공간과 즐길 거리들을 찾기는 힘들다. ‘노인의 날’에조차 3000여명의 노인들이 갈 곳이 없어 여전히 복지센터로 모여드는 이유다.

대학생 윤모(23)씨는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에 비해 길거리든 상점이든 술집이든 어딜 가도 노인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고령화는 우리도 심한데 왜 유독 없어보이는지 생각해보면, 노인들이 다른 세대들과 어울리고 함께 있는 것이 힘든 분위기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최근 ‘틀딱’ 등 노인 혐오 표현들에 충격을 많이 받았다는 직장인 이모(30)씨는 “복지 정책은 분명 발전하고 있을 텐데 문화적으로 노인과 젊은이들의 거리가 전혀 가까워지지 않는다”며 “노인은 경제적으로도 빈곤층이 많은데 온라인에서는 지하철 무임승차를 반대하는 여론이 많은 걸 보면 씁쓸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근본적으로 가정과 사회의 유대감이 약해져가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단지 정책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황명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노인복지에 대해 주로 기관과 시설 문제가 지적되지만, 사실 시설이라는 건 가장 마지막의 대안이지 최선은 아니다”라며 “결국 우리의 가정과 사회로 노인들을 돌려보내는, 일상 속에 스미는 ‘정상화’가 중요한데 갈수록 수용과 격리가 심해져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지역사회 공동체에서 결국 모든 사람이 시민의식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미아를 보면 경찰에 신고하듯 치매 등 노인 정신건강에도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고, 사회 구성원들이 준부양자 같은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명배 배재대 실버보건학과 교수 또한 “가족이 해체되고 유대감이 떨어지는 속에서 ‘커뮤니티 케어’가 계속 필요하다”며 “지역사회 시설인 대학교에서 어르신과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한다거나, 봉사활동을 통해 노인 인력을 지역사회의 자원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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