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명인열전]“곶자왈은 고지대-저지대 연결하는 생태계 완충지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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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송시태 세화중 교장

송시태 세화중 교장은 용암 암괴에 형성된 비밀 숲이자 생태계 보고인 곶자왈의 중요성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 곶자왈 보호를 위한 단체를 만들어 탐사, 연구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곶자왈 내 사유지 매입 운동을 벌이는 등 각종 개발에 따른 파괴를 막는 데 앞장서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송시태 세화중 교장은 용암 암괴에 형성된 비밀 숲이자 생태계 보고인 곶자왈의 중요성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 곶자왈 보호를 위한 단체를 만들어 탐사, 연구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곶자왈 내 사유지 매입 운동을 벌이는 등 각종 개발에 따른 파괴를 막는 데 앞장서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숲 향기가 싱그럽다. 몸과 마음이 깨끗하게 씻겨지는 느낌이다. 때죽나무에 도토리처럼 매끈한 열매가 대롱대롱 매달렸고 팽나무, 예덕나무는 푸름을 뽐냈다. 20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교래휴양림. 강렬한 햇빛을 부드럽게 할 만큼 숲이 우거졌고 바람은 산산이 흩어졌다.

○ 비밀의 용암 숲, 곶자왈

가만히 들여다보니 여느 숲과는 다르다. 흙이 드문 대신 크고 작은 바윗덩어리들이 조각난 채 지면을 덮고 있다. 그 바윗덩어리를 움켜쥐듯 나무뿌리가 감쌌다. 바위에 있는 물과 습기를 먹고 자라느라 뿌리 모양이 이리저리 뒤틀렸다. 나름의 생존방법이다. 다른 바위에는 원시의 신비함을 느끼게 하는 푸른 이끼가 덮였고 주변에는 큰톱지네고사리, 뿔고사리, 십자고사리, 골고사리, 일색고사리 등 다양한 고사리가 터를 잡았다.

한라산, 오름(작은 화산체)과 더불어 제주를 대표하는 생태계의 보물, 곶자왈이다. 2014년 제정한 ‘제주특별자치도 곶자왈 보전 및 관리조례’에는 곶자왈을 ‘제주도 화산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지대로 숲과 덤불 등 다양한 식생을 이루는 곳을 말한다’로 정의했다. 곶은 숲, 자왈은 넝쿨과 가시나무 따위가 엉클어진 덤불이라는 뜻을 가진 제주방언이다. 숲이나 덤불이라는 식생 의미뿐만 아니라 투수성이 좋은 용암지대라는 지질 및 지형적 특성까지 포함하고 있다. ‘용암 암괴 위에 있는 숲이나 덤불’이라는 뜻이다.

곶자왈은 단순한 숲이 아니다. 땅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신선한 공기 덕분에 연중 일정한 기온을 유지하면서 온대, 한대 식물이 공존한다. 국내 양치식물 종류 가운데 80%를 곶자왈에서 확인할 수 있고 식생조사를 할 때마다 미기록종이 자주 나오는 ‘비밀의 숲’이다. 아울러 제주지역의 생명수인 지하수를 만들어내는 통로이기도 하다. 시간당 3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도 한 시간 뒤면 말짱하다. 빗물이 용암 암괴 사이로 빠져 모두 지하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과거 제주사람들은 곶자왈에서 땔감, 숯, 약초 등을 얻었고 제주 4·3사건 등 난리가 날 때는 피난처이자 은신처 역할도 했다.

○ 지하수 연구하다 곶자왈에 관심

생태, 지질, 인문학적으로 곶자왈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지만 정작 제주지역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비밀의 문을 처음으로 연 선구자는 송시태 세화중 교장(57)이다. 송 교장은 2000년 고산중 교사로 재직할 당시 ‘제주도 암괴상 아아용암류의 분포 및 암질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곶자왈 형성과정을 과학적으로 처음 알렸다. 이 논문은 지질학적 분석이 대부분이지만 곶자왈 현장에서 확인한 특이한 식생을 주변에 알리면서 다양한 접근과 연구가 가능하게 됐다.

송 교장을 곶자왈로 이끈 연결고리는 지하수였다. 해양지질 연구를 희망하며 일본 도쿄(東京)대 박사과정 입학허가까지 받았으나 때마침 아내가 임신했다. 결국 일본행을 접고 교사의 길로 접어든 후 아픈 마음을 달래려고 육상에서 할 수 있는 연구를 찾던 중 지하수에 관심을 가졌다. 지하수위가 바닷물에 영향을 받는 지 분석을 하면서 전선에 뽕돌(낚싯줄에 매다는 추)을 매달아 수위를 측정하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냈다. 이 내용을 연구논문으로 썼고 후속 작업으로 지하수가 어떻게 강수에 영향을 받는 지에 관심을 가졌다.

“비가 내리면 하천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거나 증발해서 사라집니다. 나머지는 지하로 스며들었는데 그 통로가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도 물난리가 나지 않는 곳이 있었어요. 지질, 토양의 문제일 것으로 여기고 돌 하나하나를 깨면서 그 속에 담긴 광물의 특성을 따라가다 보니 끝은 바로 ‘오름’이었습니다.”

땅 속 깊은 곳의 반액체 상태의 암석물질인 마그마가 솟아나면서 오름을 만들었고, 화산이 분출하면서 나온 용암이 흘러내려 크고 작은 암괴로 쪼개지면서 요철지형을 만들어 곶자왈을 형성한 것이다. 암괴 사이에 형성된 틈이 ‘숨골’로 불리는 지하수 통로이다. 폭우가 쏟아져도 마치 스펀지처럼 금방 흡수해버린다. 숨골로 들어간 빗물은 암반과 퇴적층 등을 거쳐 지하에 쌓이면서 지하수가 된다.

○ “곶자왈 훼손 막는 보존 대책 시급”

송 교장은 이 같은 사실을 규명하려고 주말이나 방학 때면 어김없이 광물성분을 확인하는 망치, 지형도만 달랑 손에 든 채 곶자왈로 향했다. 원시 밀림이나 다름없었기에 가시에 찔리거나 미끄러져 상처가 난 것은 셀 수 없을 정도이고 방향감각을 잃어 해질 무렵까지 숲 속을 헤매기도 했다. 고생 끝에 박사논문을 완성했고 이 내용에 관심을 가진 지역 언론사 제의로 곶자왈 탐사를 시작했다. 지질은 물론이고 동식물 등 생태 탐사 내용을 지면에 연재하면서 곶자왈은 세상에 드러났다.

이런 탐사와 지속된 연구를 거쳐 제주지역 곶자왈은 한경∼안덕곶자왈, 애월곶자왈, 조천∼함덕곶자왈, 구좌∼성산곶자왈 등 크게 4개 지대로 구분하고 있으며 곶자왈용암류 분포를 세분하면 10개 정도로 나뉜다. 곶자왈 면적은 제주도 전체 면적의 6% 정도인 110km²를 차지한다. 제주의 허파, 용암 숲, 생명 숲 등으로 불리고 있지만 중요성이 알려지기도 전에 곳곳에서 훼손됐다. 농사짓기 힘든 땅이다 보니 땅값이 저렴했다. 대규모 개발을 위해 눈독을 들였다. 채석장, 골프장, 도로개발, 역사공원 등을 조성하면서 싹둑싹둑 잘려나갔다. 110km² 가운데 18.7%인 20.6km²가 사라졌다.

“곶자왈에는 세계에서 제주에서만 자라는 제주고사리삼을 비롯해 식물 600여 종, 곤충 4300여 종이 서식하고 있고 고지대와 저지대를 연결하는 생태계 완충지대입니다. 노루 등 동물들의 서식처나 보금자리이고 철새들 역시 곶자왈에서 번식을 하는 등 무수한 생명이 공존합니다. 낙엽활엽수가 대부분인 곶자왈이 있는가 하면 상록활엽수로 연중 푸른 곶자왈이 있는 등 지역에 따라 생태가 다릅니다. 더욱 치밀한 연구와 경계 구분 등을 거쳐 온전히 보존해야할 소중한 자원입니다.”

송 교장은 그동안 곶자왈 관련 논문 20여 편, 책 10여 권을 펴냈다. 곶자왈 연구와 보전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2005년 곶자왈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고 지인들과 뜻을 모아 ‘곶자왈사람들’을 조직했다. 곶자왈 보전을 위한 선도적인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훼손된 곶자왈을 활용해 자연생태환경에 맞는 체험 공간을 조성하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 ‘상생과 순환의 원리’를 제대로 알릴 계획이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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