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영장전담 부장판사 “이병호만 기각, 자백했기 때문…‘도주 우려’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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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11월 17일 10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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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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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렬 전 부장판사(48·사법연수원 23기)는 17일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남재준·이병기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해선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이병호 전 원장에 대해선 기각한 것과 관련, “가장 큰 차이는 이병호 전 원장의 경우 일종의 자백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장전담 판사 경력이 있는 이 전 부장판사는 이날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이병호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만 기각이 된 이유에 대해 “영장 기각 사유를 보면 ‘수사 진척 정도 및 증거관계 등을 종합하면’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게 바로 ‘자백이 돼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 수사가 더 됐다’는 표현으로 읽힌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남 전 원장, 이병기 전 원장, 이병호 전 원장 세 사람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총 40억여 원을 박 전 대통령 측에 뇌물로 상납했다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뇌물공여,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각각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중 이병호 전 원장은 전날 영장심사에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상납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에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남재준·이병기 전 원장에 대해 “범행을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고 중요 부분에 관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이병호 전 원장에 대해서는 “주거와 가족, 수사 진척 정도 및 증거관계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게 도망과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이 전 부장판사는 이에 대해 “일단 표면적으로 보자면 보통 영장전담 판사들은 여러 명이 피고인이 있으면 혐의가 누가 더 중하고 누가 더 가벼운지 상대적으로 비교를 하는 습성이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혐의들이 비슷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공범은 아니다. 인수인계는 했을지언정 재직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공모관계가 성립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실제 돈을 전달한 사람이라든가 국정원장 바로 아래 급들에게 영장이 청구가 안 된 건 검찰에서도 누가 혐의가 더 중한가 비교를 하는 거다. 판사 입장에서는 이 세 사람이 왔기 때문에 이 세 사람 사이에서 비교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이병호 전 원장에 대한 영장을 재청구할 경우 구속영장이 발부될 가능성에 대해선 “일단 자백을 했으니 더 수사를 해서 받아낼 건 없다고 본다. 부인을 했으면 다른 증거를 대면서 추궁을 할 텐데 자백을 했으니까 결국 공범 관계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만 조사하면 되는 것”이라며 “이병호 전 원장의 경우 보강할 부분이 사실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장 기각 사유 중 가장 이해가 안 되고 문제가 되는 부분이 ‘도주 우려의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이 전 판사는 “(이병호 전 원장 영장 기각 사유 중)도주 우려에 대한 부분에 ‘주거와 가족’이라고 돼 있다. 기각 사유가 예전보다 더 추상적이 됐다. 무슨 말인지 저도 이해가 안 된다”며 “다른 사람과 비교해 특별한 사유가 있나? 특히 이병기 전 원장의 경우 다음달 중순께 자녀가 결혼하는 걸로 안다. 그런 사람도 발부가 됐는데 그것보다 더 중한 사유가 있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중점적으로 눈 여겨서 본, 눈에 띄는 부분은 영장이 발부된 사람 2명을 보면 발부 사유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거다. 그런데 도주 우려가 있다는 얘기는 없다”며 “결국은 전체적으로 세 사람에 대해 도주 우려가 없다고 본 게 아닌가 싶다”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이 부분이 문제다. 혐의 중 가장 큰 게 국고 손실이다. 국고 손실은 손실액이 5억 원만 넘어가도 최고형이 무기징역이다. 형이 굉장히 세다”며 “이병호 전 원장은 자백까지 했으니 최고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당연히 실형 선고가 예상되는 범죄라서 도주 우려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형의 선고가 예상될 경우 보통 구속영장을 발부한다는 점에서 이병호 전 원장의 영장을 기각한 사유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

이 전 부장판사는 ‘국정원장 3명을 한꺼번에 구속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고 해석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그렇다. 그렇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기저에 깔려 있는 생각 자체가 ‘이런 류의 범죄’라기 보다는 ‘이전 정권에서 했던 범죄’에 관해 ‘이럴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별로 안 중한 거 아니냐’라고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이병호 전 원장에 대한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하는 한편, ‘상납금’의 최종 귀속자로 의심받는 박 전 대통령을 향한 수사에도 조만간 착수할 계획이다.

최정아 동아닷컴 기자 cja09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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