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사회적 약자를 대변한 노동자와 인권 변호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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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은 전태일 열사(왼쪽 사진) 47주기였습니다. 이보다 일주일 앞선 7일에는 고 조영래 변호사가 서울대에서 올해의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됐습니다. 노동과 인권 분야에서 명성을 날린 조영래 변호사는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헌신한 점을 인정받았습니다.

초등학교를 중퇴하고(나중에 명예졸업장을 받음)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의복 재단사로 일한 노동자 전태일, 서울대 법학과에 수석 입학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변호사 조영래.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그들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평화시장에서 22세의 꽃다운 나이에 분신했습니다. 그는 평화시장에서 보조원, 재단사 등으로 일하며 열악한 근로조건과 인권 침해에 맞서 싸웠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정부 등에 개선을 요구했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습니다. 극단적 선택을 한 그의 희생은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과 노동 문제를 사회 문제로 부각시켰고 이후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헌법의 사회적 기본권 확장 및 노동 관련법의 개선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태일의 삶을 세상에 알린 ‘전태일 평전’을 쓴 사람이 바로 조영래 변호사입니다. 서울대 법학과 재학 중 조영래는 3선 개헌 반대 등 학생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졸업 후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전태일의 죽음을 알게 됩니다. 유신 체제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투옥됐으며 오랜 세월 동안 경찰에 쫓기는 생활을 합니다. 고된 수배 생활 속에서 전태일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비밀리에 책을 집필했습니다.

이 책은 처음에는 전태일기념관 건립위원회 이름으로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1983년)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은 1978년 ‘분신자살한 어느 한국 청년 노동자의 생과 사’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먼저 출간되었습니다. 유신 독재하에서 조영래 변호사는 모든 원고와 사진 자료를 일본의 출판사로 몰래 보냈습니다. 나중에서야 ‘전태일 평전’(1983년)으로 다시 출간되면서 이 책의 저자가 조영래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이 책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년)의 원작입니다.

조 변호사는 대우어패럴 노조 탄압 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등을 변호하며 평생을 인권변호사로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하다 42세의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진실은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둘 수 없습니다”라는 그의 변론은 지금도 우리의 귓전을 울립니다.

‘열정 페이’로 상징되는 저임금 문제, 비정규직 차별 문제, 직장 내 성희롱 등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는 인간 중심의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전태일과 조영래가 남긴 질문에 대한 우리 세대의 답이 아닐까요.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전태일 47주기#조영래 변호사#사회적 약자 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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