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성 예산’ 지방의원 재량사업비 수사 마무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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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지검, 도의원 등 4명 추가기소… 숙원사업 해결 명목 브로커 결탁
비리 관련 기소 인원 21명으로 늘어

지방의원 재량사업비는 자치단체에서 지방의원 몫으로 일정 금액을 일괄 편성하고 지방의원이 주민숙원사업 해결 등의 용도로 쓰는 예산이다. 그래서 소규모 주민숙원사업비로도 불린다. 도의원은 1인당 5억5000만 원, 시의원은 1억 원 안팎의 예산이 편성된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형식적으로 자치단체를 거치기는 하지만 사실상 의원들이 지역구나 상임위 활동을 하면서 쌈짓돈처럼 재량껏 사용할 수 있는 ‘선심성 예산’이다.

1991년 지방자치제 부활 후 지속적으로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이를 요구하는 의원들과 의원들의 협조가 필요한 자치단체가 암묵적으로 공조하면서 재량사업비는 이름을 바꿔가며 유지돼 왔다.

주민참여예산 성격의 재량사업비는 골목길 정비나 마을 운동기구 설치 등 다양해진 주민의 요구를 충족하는 순기능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예산이 의원들의 생색내기나 리베이트 창구가 되는 역기능이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일부 의원은 리베이트를 많이 챙기기 위해 가족 명의의 위장 회사를 설립해 공사를 따내기도 했다.

지방의원들의 재량사업비 비리를 파헤쳐온 전주지검이 현직 도의원과 시의원 4명을 추가 기소하는 선에서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했다. 검찰은 재량사업비 비리와 관련해 최진호, 정진세 전북도의원과 고미희, 송정훈 전주시의원 등 지방의원 4명을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로써 비리와 관련해 기소된 인원은 전직 도의원인 강영수, 노석만 씨 등 전현직 전북도의원 4명과 전주시의원 2명, 브로커 등 총 21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노 씨 등 4명은 구속 기소됐다.

기소된 전현직 지방의원들은 초중고교 교단환경 개선과 의료용 온열기 설치, 아파트 체육시설 및 태양광 가로등 설치, 지자체 운동기구 구매 등 각종 숙원사업을 해결해 준다는 명목으로 브로커와 결탁했다. 설치업자는 브로커를 통해 사업을 수주했다. 리베이트는 브로커를 통해 의원들에게 건네졌다. 구속 기소된 브로커 김모 씨(54)는 ‘브로커는 수주액의 40%, 지방의원은 10∼15%가량 받는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뒷돈을 대가로 사업을 몰아줬으니 예산 편성과 집행의 투명성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었다.

한 전직 도의원은 자신의 회사 계좌로 돈을 챙기면서 판매이익으로 가장하기도 했다. 일부 의원은 “재량사업비 리베이트는 지방의회의 오랜 관행으로, 원칙적으론 안 되지만 부정행위로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진술했다.

정진세 도의원은 2015년 8월과 지난해 6월 재량사업비 예산을 편성해 주고 온열기 설치업자로부터 10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강영수 전 도의원은 2015년 2월부터 재량사업비로 전주 시내 학교 6곳의 체육관 기능 보강 사업 예산 등을 편성해 사업을 준 뒤 브로커로부터 2600여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의원직을 사퇴했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5200만 원, 추징금 26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노석만 전 도의원은 재량사업비로 전주 시내 아파트 8곳의 체육시설 설치사업 예산 등을 편성한 뒤 업체 대표로부터 1540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브로커 김 씨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도의원들을 상대로 납품을 청탁해 재량사업비 예산을 확보한 뒤 업자들로부터 2억5000여만 원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전북도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재량사업비 비리에 대해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지방의회의 투명성을 바로 세우는 자정의 기회로 삼겠다”며 “문제의 발단이 된 주민숙원사업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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