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명인열전]“한국 근대체육 중심에 전북인이 있었다”… 전북체육史의 산증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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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이인철 체육발전연구원장

이인철 체육발전연구원장은 전북체육사의 산증인이다. 아흔을 앞둔 나이에도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 체육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한다. 그가 수십년 동안 모아 온 체육과 향토사 자료들은 ‘전북체육사’, ‘사진으로 보는 체육백년’, ‘국역 전주부사’ 등으로 되살아났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이인철 체육발전연구원장은 전북체육사의 산증인이다. 아흔을 앞둔 나이에도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 체육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한다. 그가 수십년 동안 모아 온 체육과 향토사 자료들은 ‘전북체육사’, ‘사진으로 보는 체육백년’, ‘국역 전주부사’ 등으로 되살아났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한국 근대체육의 여명기에 전북인이 중심에 있었다.”

‘전북체육사(史)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이인철 체육발전연구원장(88·전북 전주)은 구순을 앞둔 노인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았다. 자세는 꼿꼿하고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체육에 관한 것뿐 아니라 향토사와 인물 음식 등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반평생을 전북체육사와 향토사 정리 연구에 바친 ‘은발의 청년’을 6일 전주종합경기장 안에 있는 사단법인 체육발전연구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1992년부터 그가 운영해 온 이 사무실에는 지역 역사와 체육에 관한 자료가 천장까지 가득했다. 이 원장은 대화 도중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관련 자료를 찾아와 소개했다.

○ 전북체육사의 산증인


1957년 ‘야담과 실화’라는 월간지에 작가 조영암이 전라도 사람들의 특성을 악질적으로 폄훼한 글을 게재했다. 당시 전주경찰서 사찰반장이던 이 원장은 이를 지방신문에 알려 주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도민궐기대회까지 열리게 됐다. 이 일을 계기로 지역의 역사를 바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경찰 시절 문화와 체육 분야를 담당했고 자신이 사격 선수 생활을 하기도 해 특히 체육 관련 자료에 관심이 갔다.

“역사는 기록으로 말합니다. 역사나 체육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지식도 깊지 않은 내가 해온 일은 후학들을 위해 사라져가는 자료를 모으고 나름대로 분류해 놓은 정도입니다.”

그는 2002년 ‘실록 전북체육사’를 펴냈다. 1920년대부터 연대별로 전북체육의 역사를 개관하고 종목별 역사와 주요 경기 내용을 정리했다. 전북체육의 선구자들과 체육시설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전북체육은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 들판이 넓어 대지주가 많았고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도 많아 근대 체육이 일찍 도입됐다. 1929년에 현재 덕진공원 주변에 조성된 전주공설운동장은 서울 평양에 이어 국내 3번째 스탠드를 갖춘 근대식 종합경기장이었다.

일제강점기 기독교계인 전주신흥학교 기전학교와 고창고보 등에서 교편을 잡은 이병학 김영구 등 체육 지도자와 채금석 정남식(이상 축구) 오수철(농구) 등 유명 선수가 전북에서 줄줄이 배출됐다. 6·25전쟁 이후에도 태권도의 전일섭, 레슬링의 안광렬, 검도의 전맹호 등 뛰어난 지도자들이 전주에 정착하면서 전북 체육은 절정기를 맞았다.

1963년 전주에서 열린 제44회 전국체전 당시 도민들은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아 현재 덕진종합운동장을 건립했다. 당시 숙박시설이 모자라 전국 각지에서 온 6000여 명의 선수 임원들이 전주시내 가정집에서 민박을 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전주음식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됐다는 게 이 원장의 분석이다.

이 체전은 ‘인정체전’으로 불리며 전북의 후한 인심과 여인들의 손맛을 널리 알린 대회로 평가된다.

1974년 55회 전국체전에서 전북은 종합 2위를 차지했다. 서울을 제외한 1위였다. 도세가 크지 않았던 전북이 전국을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학교체육이 어느 지역보다 강했고 훌륭한 체육지도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세계로 진출한 태권도 사범들 가운데 전북 출신이 가장 많았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 씨는 2009년 편찬위원장을 맡아 일본어로 된 전주부사를 국역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일본인들이 펴낸 책으로 상고시대부터의 전주 역사와 지리, 일제강점기 전주의 행정 교육 사회적 자료가 망라돼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책이었다.

2015년 그는 평생 수집한 체육 사진 가운데 200여 점을 골라 ‘사진으로 보는 체육백년’을 펴냈다. 이 책에서는 한국 선수들이 우승을 휩쓴 1947년과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사진들이 눈길을 끈다. 그가 보스턴까지 날아가 구한 자료들이다.

○ 6·25 민간인 학살 조사에도 관심

체육사에 천착해 있던 이 원장이 최근 집중하는 작업은 남북 분단으로 인해 불행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위령사업이다. ‘6·25 민간인 학살조사연구회’ 사업이 그것이다. 자신이 북한에서 내려와 전주에서 경찰로 근무하면서 전주형무소에서 목격했던 수많은 시신들의 모습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너무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4년째 전주 효자공원묘지에 있는 무명애국지사 묘에서 추모대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엔 추모비를 제막하기도 했다.

이 씨에 따르면 1950년 9월 26일 전주를 점령한 인민군이 전주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수감자들을 학살했다. 이 가운데 300여 명은 시신이나마 가족들에게 돌아갔지만 1753명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하고 현재 전주 효자공원묘지에 합동 안장돼 있다. 보도연맹 사건과 11사단의 양민학살사건 등 희생자들은 좌우익 가릴 것이 없었다.

“통일을 얘기하면서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에 대한 추모사업이나 진실을 밝히는 일을 묻어둔다면 그것은 또 다른 역사적 죄를 짓는 일이에요. 우리가 기록하지 않고 과거를 쉽게 잊어버린 대가가 얼마나 큽니까.”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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