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자유학기제, 이제 시작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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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영 구암중 수석교사
이석영 구암중 수석교사
수업은 밥상이다. 우리는 밥상을 차릴 때, 밥상을 받는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정성스레 상을 차린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원하는 것, 그들의 성장에 도움 되는 것을 고민하고 연구해서 맛깔나게 차려내는 것이 수업이다. 진정한 배움은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기에 단순히 지식만을 전달하는 수업은 큰 의미가 없다. 행복한 배움을 위해 아이들 스스로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수업이 필요하다. 배워야할 것은 꼭 배워야 한다. 재미있어야 한다.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수업이다. 그래서 고민이다.

아이들에게 배움에서 얻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선물하고자 4년째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카페에서 함께 소통하며 고민하고 있는 7천7백명여명의 선생님들, 연수 강의 때마다 생각을 나누는 수강생 선생님들, 다양한 연구회를 통해 밤늦게까지 함께 수업을 준비하는 선생님들. 그 속에서 자유학기제 시작으로 인해 교사들의 고민의 크기가 점점 커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자유학기제는 교사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했다. 교사에게 주어진 수업과 평가의 자율성. 그 무게는 생각보다 크다. 자율은 그에 부합하는 책임을 요구하기에 교사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솔직히 가끔 버겁기도 하다. 그래도 아이들의 웃음이 있어 기꺼이 즐길 수 있다.

흔히 ‘남에게 굴하지 않고 자신의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을 자존심이라 한다. 반면 자존감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 자신에게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라 할 수 있다. 판단의 주체가 중요하다. 자존심이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라면 자존감은 그 판단의 주체가 자신에게 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자존감은 그들에 대한 존중과 믿음에 바탕을 두고 성장한다. 자유학기제가 아이들의 생각과 선택을 중시하는 수업, 아이들의 흥미에 기반하는 수업을 중시하는 이유이다.

지난해 일이다. 한 학생이 학년 초의 ‘자기소개’ 관련 수업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좋은 성적, 부유함을 꼽았다. 그 학생은 2학기 중반쯤의 ‘My Role Model’ 수업에서 나라를 위한 헌신을 이유로 곽재우 장군을 이야기했다. 흐뭇한 성장이다. 또 다른 아이들은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상황을 설정하고, 그 상황에 맞는 대화를 영어로 만든다. 아이들 스스로 역할을 정해 UCC도 제작한다. 도전의 시작이다. 어설픔도 실패도 또 다른 배움이기에 괜찮다. 조금씩 단단해지는 아이들 모습이 대견하다. 자유학기제 이전에는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그래서 더 감사하다.

필자는 구암중학교에 올 3월에 부임해 3학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자유학기제 수업이 아닌데… 처음엔 걱정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다르다. 잘 받아들인다. 수업을 즐길 줄 안다. 1학년 때 자유학기제를 경험한 아이들이다. 아직은 모든 학교가 변했다 장담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눈에도 보이지 않고 수치화시킬 수도 없지만 교실에서 느껴지는 조용한 변화. 그 변화 속에서 아이들 하나하나가 기분 좋게 들려주고 있는 성장의 소리. 자유학기 교실에서 필자가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부대끼며 즐기는 소리다. 각각의 소리들이 다른 소리를 해치지 않고 하나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빚어내는 세상. 상상하면 할수록 행복하다.

메마른 땅에 뿌려진 씨앗처럼 싹을 틔우기 버거워하던 아이들은 자유학기제를 통해 부드럽게 일궈진 따스한 흙에서 기분 좋게 성장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아이들의 힘이다. 온 나라가 함께한 덕분이다. 하지만 아직 충분치 못하다. 뿌리가 더 굳게, 더 깊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자유학기의 변화가 연계· 확대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쉼 없이 성장한다. 매년 새로운 아이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첫 교복을 입는다. 해마다 새내기 교사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첫 제자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변화된 교실, 진정한 배움을 선물해야 한다. 뿌리는 내렸다. 수업의 진화, 자유학기제의 성장, 이제 진짜 시작이다. 조급함으로 서두르면 망칠 수 있다. 아이들에 대한, 학교에 대한, 교사에 대한 굳은 믿음과 넉넉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선생님의 ‘풀꽃’이다. ‘너’의 의미를 되뇌며, 오늘도 새로운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수업을 고민한다.
#자유학기제#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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