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징용노동자상’, 옛 미쓰비시 군수공장에 세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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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성금으로 제작, 8월 제막식… 이원석 작가 ‘해방의 예감’ 선정
일본 교토 망간광산에 처음 건립… 서울 부산 경남 제주 등도 추진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인천건립추진위원회 제공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인천건립추진위원회 제공
인천이 고향인 지영례 씨(89·여)는 중학교 2학년 때인 1943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일본군 무기공장인 인천육군조병창(造兵廠)에 자원해 들어갔다. 그 4년 전인 1939년 인천 부평지역(현 미군부대)에 들어선 조병창은 태평양전쟁에 쓸 소총 탄약 포탄 차량 같은 병기를 만들어 보급했다. 지 씨는 “공장에서 일하던 17세 소년이 옷소매와 함께 기계에 말려들어 한쪽 팔이 절단되고 어깨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장면을 봤다”고 부평역사박물관에 증언했다. 이연형 씨(1921∼2009)도 같은 조병창에서 일했다. 이 씨는 부평지역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아 조선독립당에 전달하다 1942년 일본경찰에 체포됐다. 부평 조병창에는 이처럼 강제 징용된 청소년과 위장 취업한 독립운동가를 비롯해 다양한 사람이 일했다.

이들을 기리기 위한 조각상이 시민 성금으로 건립되고 있다. 일제 최대 군수업체였던 일본 미쓰비시(三菱)의 인천 부평공장(현 부평공원)에 들어설 조각상이다.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인천건립추진위원회’(공동상임대표 김일희 김말숙 김창곤 양승조·인천건립추진위)는 “시민 성금으로 노동자 조각상 건립비 1억 원을 모아 8월 12일 제막식을 열 예정”이라고 11일 밝혔다. 시민 150여 명과 시민단체 50개가 목표액의 40% 정도를 쾌척했다.

8월 12일 옛 일본 육군조병창이 있던 인천 부평공원에 들어설 징용노동자 청동 조각상과 부조. 국내에서 첫선을 보일 징용노동자상은 시민 성금으로 제작 중이다.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인천건립추진위원회 제공
8월 12일 옛 일본 육군조병창이 있던 인천 부평공원에 들어설 징용노동자 청동 조각상과 부조. 국내에서 첫선을 보일 징용노동자상은 시민 성금으로 제작 중이다.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인천건립추진위원회 제공
징용노동자상은 지난해 8월 조선인 강제노동의 대표적인 현장인 일본 교토(京都) 단바(丹波)망간광산에 처음 세워졌다.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을 만든 조각가가 제작했다. 그 노동자상이 국내에서는 부평에 첫선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서울 용산역 앞에서 용지를 물색하는 것을 비롯해 부산 경남 제주 등에서도 노동자상 건립을 타진 중이다.

부평공원 노동자상을 만들 조각가와 작품은 공모로 선정했다. 인천건립추진위는 지정공모를 통해 접수한 3개 작품 시안 중 이원석 작가의 ‘해방의 예감’을 최종 결정했다.

‘해방의 예감’은 조병창에서 일한 지 씨와 이 씨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청동상이다. 두 사람을 부녀지간으로 설정해 민족의 역사성과 부평의 지역성을 알린다는 취지다. 가로 155cm, 세로 60cm, 높이 180cm 크기다. 15세 소녀 이마에는 일장기와 가미가제(神風)가 표시된 머리띠, 팔에는 미쓰비시 완장을 채워 당시 한반도 상황을 암시한다. 조병창 노동자인 아버지는 망치를 쥐고 연합군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 긴장한 표정을 짓는다. 광복을 예감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조병창 부속시설인 미쓰비시 부평공장은 당시 주변에 1000여 채의 줄사택(줄지어 늘어선 회사 숙소)을 지어놓고 강제 징용된 노동자들을 묵게 했다. 노동자들은 줄사택과 공장을 오가며 중장비와 다양한 무기를 생산했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부터는 잠수정까지 만들었다. 연간 소형선박 250척, 소총 4000정, 포탄 3만 발, 차량 200대의 생산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공장은 광복 후 미군정 군수공장으로 활용됐고 1970년대 초 한국군이 넘겨받았다. 1997년 군부대가 이전한 뒤 현재의 부평공원(11만3123m²)으로 꾸며졌다.

노동자상 건립을 주도하는 민중화가 이종구 씨(중앙대 교수)는 “인천은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에 이어 1960∼80년대 산업화를 이끈 노동현장의 중심이었다”며 “부평공원의 징용노동자상를 필두로 시대별 노동자상을 연작으로 세워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032-525-1810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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