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 칼럼]“한국이 너무 무서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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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대중문화의 공통점은 분노 자극해 이익을 본다는 것
국민총생산은 장기정체 국민총분노는 파죽지세
부정적 감정에 기댄 주자들 ‘집단 분노조절장애’ 부추기면 집권 이후 감당할 자신 있나

고미석 논설위원
고미석 논설위원
구매대행에서 하객대행까지, 온갖 일을 대신하는 새 비즈니스의 물결 속에 마침내 감정대행업체가 등장한다. 의뢰인을 대신해 마음껏 울어주고 슬퍼해줄 사람을 보내준다. 현장에 파견하는 ‘알바’는 연기가 아니라 진실되게 펑펑 울도록 교육받는다. 그래야 고객이 만족하고 지갑을 연다. 우는 따위의 감정 소모를 낭비로 여기거나 혹은 울고 싶어도 이미 눈물샘이 메마른 감정 파탄을 치유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한쪽으로 감정이 흐르고, 또 한쪽으로 화폐가 흐른다.

현실의 이야기가 아니고 신인작가 박슬기의 소설 ‘슬픔을 삽니다’의 설정이다. 슬픔을 사고파는 것은 아직 허구의 세계일지 몰라도 분노를 파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영화 ‘내부자들’과 드라마 ‘피고인’ 등 문화상품으로 포장된 분노는 줄줄이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희로애락 가운데 유독 분노의 감정을 대놓고 마케팅하는 데 정치권도 앞장섰다. ‘적폐청산’ 등 적개심의 과녁을 겨냥한 단어들이 부동의 영업전략으로 동원됐다. 어두운 감정의 전파 속도는 매우 빠르고 지속 시간도 길다는 것은 선거 때마다 경험한 학습효과다.

부당한 사회에 대한 분노는 건전하지만 분노가 일상화된 사회는 위태롭다. 작년 10월 이후 광장을 통해 분출된 한국 사회의 분노지수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광화문과 시청 앞에서 ‘나의 분노는 옳고 너의 분노는 틀렸다’며 서로를 분노유발자로 삿대질하는 과정에서 분노가 새로운 분노를 낳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 와중에 상업적 전략과 정략적 목적에서 잉여 분노를 부추기는 사람들은 늘고 있다. 만약 국민총분노를 측정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장기 정체 상태인 국민총생산과 달리 세계 최상위권이 될 것이다.

슬픔과 분노의 표출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집단 속에서의 표출은 더 강력한 효과를 낸다. 문제는 원푸드 다이어트가 영양 불균형으로 몸을 탈진시키듯, 분노에 집착하는 감정 불균형은 평정심을 소진시킨다. 파괴적 에너지도 발산한다. 차곡차곡 쌓인 분노의 칼끝은 쓰임새를 찾지 못하면 주변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게 내상을 입히기 십상이다.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자식 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것으로 감정지능, 그리고 마음의 균형을 지목했다. 내면의 전쟁터에서 감정을 다스리는 일과 4차 산업혁명을 연계한 관점이 참신하다. 급변하는 세상일수록 감정관리와 평정심을 지키는 훈련이 나를 지키고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분노의 파고가 제멋대로 요동치지 않게 통제할 것인가. 아니면 고삐 놓친 분노가 나를 지배하게 내버려둘 것인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자체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길이다.

“한국에 살려고 왔는데 솔직히 말해서 한국 사람들과 한국 사회가 너무 무섭다”, 조국이 그리워서 30여 년의 외국 생계를 접고 최근 귀국한 지인이 휴대전화로 보내온 메시지다. 우리는 타성에 젖어 그냥저냥 넘기지만, 외부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 사회는 그만큼 살벌했나 보다. 한동안 ‘헬조선’이란 말과 더불어 ‘한국이 싫어서’란 소설이 화제였다. ‘싫다’보다 ‘무섭다’는 그 농도가 훨씬 짙다. 소설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수는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미래도 아닌, 당장 현재가 두려운 땅이라면 무슨 희망의 싹이 자라겠는가.

투표소 갈 날이 한 달도 안 남았다. 정치권은 언제나처럼 상대 진영과 난타전으로 짧은 일정을 소모한다. 당장 표 얻을 욕심에 분노로 뭉친 이들한테 더 많은 분노를 주입하고, 두려움으로 결집한 이들에게 보다 큰 두려움을 자극한다. 분노와 두려움의 연대가 맞선 모양새로는 누가 뽑히든 나라의 미래가 막막하다. 이런 식으로 유권자를 집단 분노조절장애로 몰아가서는 집권 이후 그 어떤 리더의 앞날인들 하루가 조용할까.

사상 초유의 정치 사태 속에 한국인의 분노지수가 과열된 엔진처럼 위험수위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나라 밖에서 태풍이 몰아치는데 안에서는 마치 운동회 청백전처럼 자리싸움 벌이느라 왁자지껄하다. 과도한 분노는 초가삼간을 태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박슬기#슬픔을 삽니다#4차 산업혁명#집단 분노조절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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