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새 없이 “놀아줘요”… 조카바보도 ‘항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동아일보기자, 일일 보조 보육교사 체험
야외활동 챙기랴, 설거지하랴… 두시간 지나자 목쉬고 체력 바닥
“백 더하기 천” 질문에 “백천” 멘붕
“보육교사 스트레스 이젠 알것같아”

3월 30일 동아일보 조건희 기자(32)가 서울 서초구립 하나푸르니어린이집에서 일일 보육교사를 체험하며 아이들과 악기 연주 놀이를 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3월 30일 동아일보 조건희 기자(32)가 서울 서초구립 하나푸르니어린이집에서 일일 보육교사를 체험하며 아이들과 악기 연주 놀이를 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아직 자녀는 없지만 ‘조카 바보’로 살아온 세월이 5년이다. 천사 같은 아이들 돌보는 게 뭐가 힘들겠나. 기자는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립 하나푸르니어린이집 5, 6세반(하늘반)에서 일일 보조 보육교사 체험 전 이런 자신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놀아 달라”며 달려드는 아이 33명 앞에서 체력이 바닥나고 목이 쉬는 데에는 2시간이 채 안 걸렸다.

오전 9시, 아이들은 낯선 남자 교사가 신기한 듯 ‘돌직구’ 질문을 퍼부었다. 기자의 각진 턱을 보며 “껌을 많이 씹었느냐”고 묻거나 안경을 만지며 “엄마 말씀 안 듣고 TV를 가까이서 봤느냐”고 물었다. 같은 반 보육교사 문현지 씨(31·여)는 “아이들은 궁금한 게 있으면 에두르지 않고 끝까지 물어 본다”며 “당황하지 않고 언어 예절을 가르치며 답변해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전 11시,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야외 활동’ 시간엔 옷차림이 중요했다. 치렁치렁한 치마나 모자가 달린 티셔츠를 입으면 나뭇가지 등에 걸려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추가 많은 옷보단 고무줄 옷이 낫다. 화장실에서 스스로 입고 벗지 못하면 ‘나는 혼자 소변도 못 보는 아이’라며 자괴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낮 12시, 함께 보육교사를 체험한 고득영 보건복지부 보육정책관(52·이사관)은 3세반 12명의 물병을 설거지한 뒤 뚜껑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20년 전 내 아이 키울 땐 이런 물병이 없었는데….” 고 이사관을 보며 보육교사가 “뭐든 단순한 모양의 물건을 챙겨주는 게 좋다. 여닫기 복잡하면 보육교사가 꼼꼼하게 설거지하지 못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오후 2시, 블록놀이를 하는 재원 군(6)에게 “잘 쌓았다”고 칭찬한 게 화근이었다. 다른 아이가 “제 것은요”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자아와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의 아이들은 칭찬에 민감해 쉽게 박탈감을 느낀다. 이 경우 “반듯하고 높게 쌓았구나”라며 객관적인 사실을 들려주는 게 아이들을 공평하게 격려하는 방법이다.

오후 4시, 아이들이 집에 가기 시작할 즈음 기자는 “백 더하기 천이 뭐냐”는 인오 군(5)의 유도성 질문에 “백천”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혼이 나간 상태였다. 이때 보육교사 김남경 씨(27·여)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빈 교실로 향했다. 한 달에 한 번 어린이집으로 찾아오는 심리상담가를 만나는 날이다. 상담을 맡은 이경희 내마음심리상담연구소장은 “상담 진행 중 눈물을 흘리지 않는 보육교사가 없을 정도로 이들의 업무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며 “가장 큰 원인은 무리한 요구나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라고 말했다.

오후 6시, 보육교사들은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며 “학부모가 어린이집에 자주 찾아오고 관심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가정 내 보육과 어린이집의 활동이 자연스럽게 연계될수록 아이의 발달에 도움이 되고, 불필요한 오해도 덜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득영 보육정책관은 “학부모 참여 프로그램이 많은 ‘열린 어린이집’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일일 보조#보육교사#체험#스트레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