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 흔드는 ‘약대 2+4학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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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사립 A대에서 2015년 모두 367명이 스스로 학교를 그만뒀다. 이 중 77명(21%)이 화학, 생물학 관련 B학부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2015년 B학부의 입학 정원은 158명(A대 전체 정원의 5% 정도). 미복학자 2명까지 포함하면 중도 탈락자가 79명에 달했다. 한 해 신입생의 절반이 학교를 떠난 것이다. 2014년에는 이보다 많은 95명이 중도에 떠났다. B학부의 한 교수는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둔 이유는 약대 편입 때문이고 매년 이 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며 “떠나지 않은 학생 대부분도 약대 편입 준비를 하고 있어 학과가 황폐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13일 한국약학교육협의회와 교육부 등에 따르면 ‘2+4학제’가 도입된 이후 약대가 이공계 대학생들의 블랙홀이 되면서 상당수 대학들이 더 이상 이공계 학과의 정상적 운영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약대 편입 시험에 유리한 일부 학과는 매년 신입생의 절반에 가까운 학생들이 약대 편입 조건만 채우고 떠나는 실정이다.

4년제로 운영되던 약대는 2009년부터 2+4학제의 6년제로 전환했다. 고교생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통해 약대에 입학하는 방식은 폐지되고, 대학 2년을 다닌 뒤 약대에 진학해 4년 과정을 이수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2+4학제 도입 이후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는 게 협의회의 판단이다. 먼저 약대 편입을 위해 치러야 하는 약학대학 입문자격시험(PEET)에 유리한 학과는 정상적 운영이 어려울 정도라는 것. PEET에는 화학, 생물학, 물리학 등에서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학과에서 약대 편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많다.

이 때문에 약대 합격자가 많이 배출되는 수도권 주요 대학의 화학, 생물학, 생명공학 등 학과에서는 학생들이 빠져나가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는 것. 일부 학과는 황폐화 지경에 이르고 있다. 협의회 조사 결과 약대 편입생의 52.5%가 화학, 생물, 생명과학 관련 학과 출신이었다. 또 수도권 주요 11개 대학의 화학과 자퇴율도 2+4학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2.2%에 불과했지만 도입 이후인 2010∼2014년에는 평균 36.6%로 16배로 늘어났다.

한 화학과 교수는 “똑똑한 학생들은 일찍 시험에 붙어 학교를 떠나고 남은 학생들도 편입시험에 전념하기 위해 편입 조건인 4학기를 채우면 휴학하는 경우가 많다”며 “학생들이 학교에서 쉬운 과목만 듣기 때문에 어려운 전공 수업이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실험 과목 등은 폐강이 많아 일부 열심히 학교를 다니려는 학생들이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사교육 억제도 2+4학제의 도입 이유였지만 편입을 준비하는 학생 대부분이 사설학원 등에서 준비하면서 사교육 억제 취지도 무색해졌다. PEET 학원 등을 통해 준비하는 비용만 월 100만 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치러진 PEET 응시자는 1만5206명으로 전국 35개 약대 정원 1693명과 비교하면 경쟁률은 9 대 1에 달했다. 재도전에 나서는 이들이 늘면서 26세 이상 응시자 비중이 2014학년도 32.2%에서 2017학년도 36.0%로 높아졌다. 한 약대 교수는 “안정적인 직업으로서 약사를 선택하는 학생이 늘면서 대학원에 가는 학생도 줄어 약대의 연구 역량도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학생들이 약대 편입에 도전하는 것은 약사가 안정적으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업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한국직업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약사의 평균 연봉은 5120만 원이고 직업만족도는 80%였다.

협의회는 “약대 2+4학제는 지나친 사회적 폐해를 만들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신입생을 선발해 6년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통합 6년제로 조속하게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사안으로 지속적으로 논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이공계#대학생#기초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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