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살찌우는 지역사랑상품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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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지자체 30여 곳 발행
‘산천어축제’ 티켓 구입하면 화천군내 사용 상품권 지급
“풀뿌리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
“끼워팔기로 사용 불편” 불만도

 14일 시작해 2월 5일까지 계속되는 강원 화천군 ‘산천어축제’는 11년 연속 참가자 100만 명 돌파를 기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얼음낚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손맛 덕분에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체험료는 대표 코스인 ‘산천어 밤낚시’가 1만2000원,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썰매’는 1만 원 등으로 싼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이 체험료에는 ‘화천사랑상품권’ 가격이 포함돼 있다. 낚시 체험료 1만2000원을 내면 5000원짜리 화천사랑상품권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체험료의 절반을 돌려준다’고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축제를 즐기기 위해 상품권을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셈이다. 화천사랑상품권은 화천군이 찍어내는 ‘지역사랑상품권’으로 화천군 내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화천군에 따르면 지난해 산천어축제에서 이 같은 방식으로 5억6000만 원어치의 화천사랑상품권이 판매됐다. 지난해 전체 상품권 판매 금액(17억3800만 원)의 30% 이상을 산천어축제에서 거둬들인 것이다.

 행정자치부는 24일 화천군을 지역사랑상품권 모범 사례 중 하나로 꼽고 상품권 발행을 원하는 다른 지자체를 상대로 컨설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행자부 관계자는 “축제를 즐기러 방문하는 관광객의 지역 내 소비를 자연스럽게 유발해 풀뿌리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지역사랑상품권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해 그 지역 내 가맹점에서만 쓸 수 있도록 한 상품권이다. 대형마트나 대기업 프랜차이즈는 가맹점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주로 소규모 자영업자나 농가를 대상으로 쓸 수 있다. 현재 지역사랑상품권을 판매하는 지자체는 전국에서 30곳을 훌쩍 넘는다. 상품권 발행 자격을 정한 법규가 별도로 없기 때문에 지자체가 조례만 만들면 발행할 수 있다. 강원 춘천시와 경북 포항시 등 기초자치단체뿐 아니라 광역단체인 강원도도 올해부터 발행하기로 하는 등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지역사랑상품권을 써본 관광객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지방 경제를 살리는 데 한몫한다는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화천군 같은 ‘끼워 팔기’ 방식 탓에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든다는 불만도 나온다.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산천어축제에 다녀온 서울 주민 송인욱 씨(41)는 “이것저것 체험을 하다 보니 상품권이 3만 원어치 정도 생겼지만 인파로 북적대는 축제장 인근 식당에서 다 쓰고 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이왕 강원도로 관광을 온 김에 춘천에 들러 닭갈비를 먹을까 했는데 상품권 때문에 원치 않는 소비를 한 기분도 든다”고 말했다.

 이렇게 상품권을 끼워 파는 방식은 다른 지자체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강원 양구군은 단체관광객을 데려오는 여행사에 양구사랑상품권을 1인당 1만 원씩 의무적으로 구입하도록 했다. 일종의 ‘지역 입장료’인 셈이다. 또 대다수 상품권에는 2∼5년의 유효기간이 있다. 타지 관광객의 입장에선 시일이 지나면 구입한 상품권이 휴지조각이 되기도 한다.

 온라인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는 지역사랑상품권을 액면가보다 할인해서 파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용기한이 촉박한 경우 20% 이상 할인된 가격에도 나온다. 가맹점 외에는 현금화를 금지한 조례 위반이지만 사실상 아무런 제한이 없다. 행자부 관계자는 “가맹점을 확대하는 등 소비자와 지자체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지역사랑상품권#지자체#끼워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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