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뺨치는 체력-열정… 일하는 ‘뉴 세븐티’ 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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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시대 이끄는 70대 청춘들

10일 서울 송파구의 한 사무실 공사현장에서 곽영신 씨가 수도배관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곽 씨는 힘들고 복잡한 공사를 어렵지 않게 해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10일 서울 송파구의 한 사무실 공사현장에서 곽영신 씨가 수도배관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곽 씨는 힘들고 복잡한 공사를 어렵지 않게 해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한 포대 더 얹으소.”

 6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설비업체 사무실. 고교생들이 즐겨 신는 유명 스포츠 브랜드 운동화와 청바지, 붉은색 점퍼를 입은 곽영신 씨(76)가 자신의 어깨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깨에는 이미 20kg짜리 시멘트 포대가 올려져 있었다. 하지만 곽 씨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이날은 설비업체가 배관 작업을 담당할 기술공을 뽑는 면접 날이었다. 양쪽 어깨에 각각 20kg짜리 시멘트 포대를 하나씩 짊어진 곽 씨는 보란 듯이 계단을 두세 칸씩 성큼성큼 오르내렸다. 곽 씨를 본 다른 지원자들도 경쟁적으로 시멘트 포대를 들었다. 곧이어 3m 높이의 사다리가 등장했다. 곽 씨가 또다시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섰다. 주저 없이 성큼성큼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튼튼한 무릎을 뽐냈다.


 이날 지원자 17명 가운데 11명이 곽 씨와 같은 70대였다. 업체가 ‘나이 제한 없음’이라는 조건을 내걸자 젊은이 뺨치는 ‘슈퍼 70대’들이 모여든 것이다. 이날 곽 씨는 60대 지원자들도 제치고 최종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곽 씨는 “첫 월급을 타면 며느리 용돈을 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곽 씨처럼 일터에서 50, 60대는 물론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과 열정을 갖춘 70대가 각광 받고 있다. 열정적으로 사회 활동을 이어 가는 70대를 ‘뉴 세븐티(New seventy)’의 출현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과감한 소비 생활로 자신을 꾸미는 60대를 일컫는 경제 용어인 ‘뉴 식스티’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새로운 70대’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10일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2015년 정부로부터 인건비 등을 지원받아 기관·기업에 채용된 60세 이상 고령자 중 절반이 넘는 66.9%는 70대로, 60대(17.6%)보다 4배 가까이 많았다. 고령자 채용을 위해 마련된 고령자 친화 기업도 지원자의 평균 연령은 70세에 근접한 68세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자체 설문에서 ‘언제까지 일하고 싶냐’라고 묻자 평균 74세로 나타났다.

 뉴 세븐티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10일 서울 송파구 한 자동차정비소에서는 이희철 씨(70)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자신을 ‘자동차 검사 대행원’이라고 소개한 이 씨는 “정비 중인 차량의 사진을 찍어 차주에게 보내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같은 시간 송파구 한 교육기관에서는 교사 출신의 장기춘 씨(74)가 어린이들을 돌보는 중이었다. 장 씨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재미있는 유행어를 내뱉자 아이들은 박장대소했다. 장 씨는 “어제 유튜브에서 본 개그맨을 따라한 것”이라며 “평소에도 유튜브를 통해 유행어를 익히곤 한다”라고 자랑했다. 그는 이 기관에서 ‘감각적인 교사 1위’로 꼽힌다.

 70대들이 활발히 사회 활동을 이어 가는 것은 신체 능력이 저하되는 속도가 이전 세대에 비해 현저히 느려졌기 때문이다. 고령화 정책 연구가 활발한 일본에서는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고령자들의 신체 능력이 5∼10세 젊어졌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70대가 60대 못지않은 체력과 지적 수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단순히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는 점도 기존 노인 노동 행태와 달라진 부분이다. 과거에는 일거리를 찾는 노인의 상당수가 ‘생계형 홀몸 노인’이었다면, 지금은 경제적 여유 속에서 노년을 즐기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곽 씨도 “100만 원 남짓만 벌어 주말마다 부부 여행을 떠나는 데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고 싶어서”라고 구직 동기를 밝혔다.

 통계청이 최근 55∼79세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사람이 취업을 원하는 이유로 ‘생활비 보탬’(57%)을 꼽았다. 전문가들은 의식주에 필요한 ‘필수 생활비’가 아니라 여가 비용이 필요한 현실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들을 ‘앙코르 라이프 세대’라고 표현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성인 5.7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한다. 그러나 고령 인구(65세 이상)가 빠르게 늘어나고 생산 가능 인구(15∼64세)가 급속히 감소하면서 20년 후엔 성인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 능동적인 노년을 보내자는 삶의 태도인 ‘앙코르 라이프’는 이 같은 국내 고령화 현실의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뉴 세븐티#70대#노동인구#5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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