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윤필용 비서라고 고문-강제전역… 인생 끝난줄 알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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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만에 전역 무효판결 받은 정봉화 前소령 인터뷰

봉화 씨가 18일 기자와 만나 ‘윤필용 사건’에 대한 소회와 당시 받은 고문의 참혹함을 털어놓고 있다. 아래 사진은 1965년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뒤 김포공항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윤필용 소장(좌)과 그의 전속부관이던 정봉화 씨.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정봉화 씨 제공
봉화 씨가 18일 기자와 만나 ‘윤필용 사건’에 대한 소회와 당시 받은 고문의 참혹함을 털어놓고 있다. 아래 사진은 1965년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뒤 김포공항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윤필용 소장(좌)과 그의 전속부관이던 정봉화 씨.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정봉화 씨 제공
“내 인생이 거기서 다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정봉화 씨(77)는 43년 전 전역지원서에 서명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18일 기자와 만난 그는 자신을 ‘윤필용 사건의 첫 번째 희생양’이라고 소개했다. 사건 관련자 가운데 가장 먼저 보안부대(현 국군기무사령부)에 연행된 정 씨는 징역형은 면했지만 당시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관절이 괴사해 평생을 지팡이 신세로 살아 왔다.

1973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던 윤필용 소장의 비서실장(소령)으로 근무했던 정 씨는 그해 3월 11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이날 정 씨는 윤 소장 생일 조찬에 참석하기 위해 윤 소장 자택을 찾았다. 대문 앞에 다가가자 작업복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남성 네 명이 정 씨를 둘러쌌다. “죽고 싶지 않으면 따라오라”며 정 씨를 지프에 강제로 태우고 간 곳은 보안부대 서빙고분실이었다.

‘신고식’이 정 씨를 맞이했다. 보안부대 요원들에게 명찰과 계급장을 뜯긴 정 씨는 쇠파이프로 온몸을 두들겨 맞았다. 정신을 차리자 손발이 의자에 묶여 있었다. “윤 소장이 유신헌법 반대를 추진 중이냐”, “윤 소장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모반을 꾸몄느냐”는 등의 질문과 ‘물고문’, ‘비행기 태우기’, ‘전기고문’과 같은 혹독한 고문이 이어졌다.

정 씨는 “일개 소령이 뭘 알겠느냐”고 답변했지만 요원들은 10년 가까이 윤 소장을 보좌한 정 씨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정 씨는 “당시 조사실에 이미 손영길 당시 수경사령부 참모장(준장), 김성배 당시 제3사관학교 생도대장(준장)의 이름이 적힌 서류가 있었다”며 “미리 짜놓은 듯한 순서대로 질문을 하고 고문을 하는 일상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정 씨는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웠지만 허위 자백으로 전우들을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요원들은 한 달이 지나도록 만족스러운 답이 없자 정 씨에게 전역지원서를 내밀었다. “서명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처럼 형사재판을 받도록 하겠다”며 협박하고 고문했다. 정 씨는 처자식 생각으로 버텼지만 결국 사흘째 되던 날 서명했다. 퇴직금을 탈탈 털었지만 쌀 한 말밖에 살 수 없었다. 수년간 이어진 보안부대 요원들의 감시에 육사 동기들과도 연락할 수 없었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1975년 경북 포항으로 내려간 정 씨는 용접 기술을 배우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정 씨를 만나러 온 윤 소장과 1년 동안 함께 어울리며 바다낚시를 다니기도 했다. 윤 소장은 “고기가 왜 이리 잡히지 않느냐”며 역정만 부릴 뿐 사건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이후 정 씨는 군인 정신으로 자신의 사업체를 포항제철 외주 파트너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수필가로 등단하고 자서전을 발간하는 등 새 삶을 살았지만 정 씨는 늘 가슴 한편이 허전했다. ‘조국에 헌신하는 군인이 돼라’는 돌아가신 아버지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직도 그의 개인 사무실에는 소령 시절 군복과 군 시절 받은 훈장들이 걸려 있다. 정 씨가 명예회복을 위해 이번 소송을 제기한 이유다.

드디어 9일 정 씨의 명예가 법적으로 회복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김병수)는 이날 정 씨가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전역명령처분 무효 확인 청구소송에서 “정 씨가 가혹 행위로 의사결정의 자유가 박탈될 정도의 강박 상태에서 전역지원서를 작성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윤필용 사건으로 강제 전역을 당한 31명 중 행정소송에서 이긴 첫 번째 사례다.

정 씨의 변론을 맡은 박주범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40년 넘게 말 못 할 고통 속에 살아온 정 씨에게 이번 판결이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 윤필용 사건


1973년 윤필용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 술자리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이 노쇠했으니 물러나게 하고 형님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쿠데타 모의 혐의를 받았던 사건. 이를 계기로 윤 사령관을 비롯한 군 간부 13명이 징역형을 받았고 31명은 강제 예편됐다.

#윤필용#비서#정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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