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고졸채용 정책… 비정규직 굴레 못벗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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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취업 좁은문]<上> 깨지지 않는 차별의 벽

20대 여성 A 씨는 2012년 특성화고를 졸업한 뒤 한 금융회사에 입사했다. 대졸 사원보다 직급이 낮았고 비정규직이었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정규직이 될 거라고 기대했다. 이 회사는 A 씨 같은 고졸자 수십 명을 채용하면서 보도자료도 뿌렸다.

그러나 고졸자에게만 유독 두꺼운 ‘유리 천장’(여성과 소수민족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는 걸 깨닫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도 되지 않았고 복지 혜택도 차별받았다. 결국 A 씨는 2년도 안 돼 사표를 냈다. 그는 “정부와 회사를 믿었지만 고졸 성공 신화는 허상이었다. 늦게라도 대학에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 직급 낮고 저임금에 고통

이명박 정부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고졸 채용 장려 정책을 강하게 추진했다. 이에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금융권과 대기업도 적극 호응했다. 이명박 정권 동안 한 해 평균 공공기관에서 약 2000명, 시중은행은 약 400명의 고졸 청년을 채용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고졸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에 저임금이었다. 정규직이 되려면 바늘구멍 같은 시험이 필수였다. 정권이 바뀌자 고졸자를 구조조정 하거나 퇴사를 압박하는 회사도 늘었다. 공공기관 고졸 채용은 지난해 1800여 명까지 줄었다. 한 증권회사는 입사 1년밖에 안 된 고졸 사원에게 희망퇴직을 받아 논란이 일었다.

이에 따라 2009년 9.4%에서 2012년 8.1%까지 떨어졌던 고졸 청년 실업률은 2013년(8.8%)부터 다시 늘어 2014년부터 2년 연속 10.0%를 기록했다. 정권이 바뀌자 금융권과 공공기관, 대기업들이 적극 채용에 나서지 않은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사이 고졸 청년들은 질이 더 낮은 일자리로 몰렸다. 2014년 250만 명 수준이던 고졸 비정규직은 올해 270만 명을 넘어섰다. 이전 정부의 고졸 채용 정책이 사실상 실패로 끝나면서 실업 상태에 놓이거나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고졸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 “교육개혁 동반돼야”

박근혜 정부 역시 ‘능력 중심 사회’를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일·학습 병행제 같은 선(先)취업 후(後)진학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청년들이 고등학교에서부터 전문적인 직업교육을 받고 취업을 한 다음 대학 진학도 병행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일·학습 병행 참여 기업은 2013년 51곳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7485곳(6월 말 기준)으로 급증했다. 학습근로자도 2014년 3197명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2만910명으로 늘어났다. 일찍 취업해 기술 습득과 학업을 병행하려는 청년들과, 우수 인력을 조기에 확보하려는 중소기업들의 수요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고졸자에 대한 ‘유리 천장’이 아예 사라지도록 정부가 더 강하게 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취업만 독려할 게 아니라 고졸자가 취업 이후에도 꾸준히 전문성을 기를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정부가 이런 지원을 통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고졸자에 대한 차별과 부정적 인식을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학 구조조정 등 교육개혁으로 불필요한 대학 진학을 줄이고, 직업교육을 대폭 강화해 고등학교가 유능 인력을 직접 배출하는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실제로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일·학습 병행 훈련 종료 후 6개월 이상 회사를 다닌 비율(70.7%)은 청년인턴(74.4%) 등 기타 직업훈련 사업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학습 병행을 중도에 포기하고 대학 진학이나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청년이 적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박상현 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고졸자들이 취업 이후에도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학벌주의를 타파해 부정적 인식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고졸 취업#차별#채용#비정규직#실업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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