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SNS로 꽃사진 배달하는 ‘사진 전도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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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겸 사진작가 박용기 박사… 엽서 크기 꽃 사진 전시회 열어
“잘 찍으려면 기술보다 마음이 중요”

박용기 박사가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에서 열리고 있는 자신의 꽃 사진 전시회에서 아름답게 꽃을 찍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박용기 박사가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에서 열리고 있는 자신의 꽃 사진 전시회에서 아름답게 꽃을 찍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태주 시인의 ‘풀꽂’의 이 구절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문위원 박용기 박사(65)의 사진 여정을 기록한 듯하다.

그는 꽃을 ‘가까이 자세히 오래’ 보아 찍는 ‘화초 접사’로 유명하다. 아름다움은 대상 자체에 있다기보다 발견되는 것이라는 지론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4륜구동 지프에 카메라 장비를 싣고 장거리 출사에 나서는 법이 없다. 표준연구원 주변 산책로나 대전 시내의 한밭수목원에서 선씀바귀처럼 아무데서나 발에 툭툭 차일 흔하디흔한 꽃들을 찍는다. 지난 여름 휴가 때 강원의 곰배령 등을 다니면서 단풍취와 이질풀 등 야생화들을 담아 왔는데 이는 매우 드문 일이다. 내달 4일까지 자신이 최근까지 교무부총장을 지낸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에서 열린 뒤 그 다음부터는 표준연구원으로 옮겨질 그의 사진전에 좀 더 다양한 야생화가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앞서의 여름 출사 덕분이다.

그는 서울대와 KAIST를 나와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표준연구원에서 선임본부장을 지냈고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등을 수상한 전형적인 과학자다.

그가 사진에 취미를 붙인 것은 2001년부터다. 위암 수술로 1년 연구년을 사용한 다음 해다. “심신 치유를 위해 표준연구원 주변을 자주 산책했어요. 그런데 마음의 부산함이 걷혀서인지 놀랍게도 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즈음 막 세상에 나온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죠.”

그는 꽃 사진을 찍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고 연구원 홈페이지에 연결시켰다. ‘이 시기 이런 꽃이 어디에 있으니 가 보라’고 동료 직원이나 지인들에게 알려 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점차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꽃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어졌다. 사진 기술을 독학해 자신만의 사진을 구현해 내는 전문가가 됐다.

박 박사는 “‘창의성은 제약을 사랑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제약을 넘어서려는 과정에서 창의성이 발현된다는 뜻”이라며 “건강 문제와 아내의 만류로 장거리 출사가 어려워져 가능한 한 주변에서 최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방법을 찾아 나서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가 전시하는 사진은 모두 엽서 크기다. 그렇다 보니 관람객들이 ‘가까이, 자세히, 오래’ 감상하지 않을 수 없다. “관람객들이 작은 액자에 코를 대고 오래 보다 작가와 하나가 됩니다. 제가 의도한 작가와 관람객의 합일인 셈이죠.”

꽃 사진에 아름다움과 의미를 부여하는 제목을 붙이다가 그는 시인이 돼 버렸다. 과학산업 분야 인터넷 신문인 헬로디디(www.hellodd.com)에 ‘사진공감’이라는 정례 칼럼을 쓰면서 그는 항상 사진에다 에세이와 시를 곁들인다. 30일 자신이 참여하는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 한 장’ 모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방에 꽃범의꼬리 꽃 사진을 배달하면서 그는 ‘갑자기 찾아온 초가을 아침’이라는 제목을 얹었다. 매일 아침 지인들에게 배달하는 그의 꽃 사진의 제목은 무수히 시집들을 들척인 결과물이다.

박 박사는 어느덧 사진 전도사로 변했다. 재능 기부 모임인 ‘행울림’이나 예술과 과학의 만남을 추구하는 ‘아티언스’의 일원으로 고교생과 공무원 등을 상대로 ‘과학과 사진’, ‘사진 잘 찍는 법’ 등을 강의한다. 꽃을 가장 아름답게 찍는 방법을 물었더니 기술보다 ‘마음’을 강조한다.

“가장 아름다운 곳을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것들은 과감하게 버려야 하고요. 그리고 나만의 시각을 가지고 여유롭게 즐겨야 합니다. 한동안 피사체인 꽃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면 꽃이 알려 줍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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