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물건 사듯 최저가 입찰… 방과후학교 멍들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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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운영 업체들 “가이드라인 취소” 행정소송

서울 송파구의 A초등학교는 올해 3월 방과후학교 영어 수업을 2주 만에 중단했다. 최저가 입찰제로 선정된 위탁업체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 처음엔 수업하던 강사가 사정이 있다며 교체됐고, 새로 온 강사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해 방과후학교 강사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A초교 교장은 “첫 주에 해야 하는 레벨 테스트조차 준비가 제대로 안 돼 그냥 시간을 보내는 등 앞으로도 정상 수업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중단했다”고 말했다.

방과후학교를 위탁 운영하는 업체들이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업체를 정하는 현 제도에 문제가 있다며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8일 교육부와 전국방과후법인연합 등에 따르면 방과후학교 위탁업체 20곳은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등의 방과후학교 운영 가이드라인을 취소하라며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방과후학교 운영 가이드라인이 규정하는 2단계 입찰 방식이 프로그램의 질 저하를 유발하는 최저가 입찰을 강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방과후학교 위탁업체를 선정할 때 조달청 나라장터를 활용한 2단계 입찰 방식을 도입했다. 1단계에서 각 학교의 교사와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평가위원회에서 업체의 제안서를 평가해 복수의 적격 업체를 선정한 뒤 2단계에서는 적격 업체 중 최저 가격으로 응찰한 업체를 낙찰하는 방식이다.

소송을 낸 방과후학교 위탁업체들은 2단계 입찰 방식이 1단계 자격심사 결과와 관계없이 2차에서는 오로지 최저 가격을 적어 낸 업체가 낙찰되는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질 좋은 수업 계획을 만들어 1차에서 아무리 고득점을 받아도 2단계에서는 최저가가 아니면 낙찰이 불가능하다는 것. 반대로 1단계 평가에서 최저 수준으로 통과해도 가격만 낮으면 최종 낙찰이 된다는 것이다. 업체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가격이어서 프로그램의 질이나 강사의 능력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강사들의 수입도 크게 줄었다. 가격 경쟁이 심하다 보니 학교가 제시한 금액보다 큰 폭으로 입찰가를 낮추게 되고, 업체들은 낮아진 낙찰가에 따라 강사비를 지급해 강사비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 올해 들어 평균 강사료가 10% 이상 낮아진 것으로 업체들은 보고 있다.

학교에서도 부작용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 강북구 B초등학교는 1학기 방과후학교 컴퓨터교실 위탁업체가 갑자가 파산하며 다른 업체를 선정할 때까지 한 달 정도 방과후학교 컴퓨터교실 수업을 중단해야 했다. 이 학교 교장은 “업체가 파산해 학교도 피해를 봤고, 학부모들의 원망도 들었다”며 “물건을 구입하는 것도 아닌데 2단계에서 제일 싼 가격을 제시하는 업체가 무조건 맡게 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의 한 초등학교 교장도 “싸게 들어오는 업체가 맡게 되니 강사의 질과 교육 내용을 보장하기 어렵다”며 “최저가 입찰로 업체를 선정하게 된 이후 강사의 열정과 수업의 질적 차이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에 교육부 관계자는 “1차에서 일정 기준 이상의 평가를 받아야 선정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일정한 수준으로는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방과후학교#위탁운영#업체#가이드라인#행정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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