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가정 대부분 ‘홈스쿨링’ 핑계… 당국은 ‘정원외’로 방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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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안전한 나라로]<中>악용되는 홈스쿨링

“집에서 교육방송을 보여 주고 학습지를 풀게 할 겁니다.”

아이가 같은 반 친구를 때린 일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은 부모는 그 뒤로 애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담임교사가 여러 번 만류했지만 부모는 “더 이상 참견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연락을 끊었다. 집에 찾아갔지만 만나 주지 않았다. 거기까지였다. 아이는 결석 3개월 만인 2012년 8월 ‘정원 외 관리 대상’에 등록됐다. 그로부터 다시 3개월 뒤 아이는 친부에게 2시간가량 무차별 폭행을 당한 끝에 숨졌다.

2012년 11월 숨진 최모 군(당시 7세)은 올해 1월 잔혹하게 훼손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 3년 2개월 동안 누구도 최 군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최 군의 부모는 “집에서 교육하겠다”던 말과는 달리 학습지를 사 주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폭행을 일삼았고 친모는 이를 알고도 방치했다. 최 군이 학교를 떠난 뒤 사망할 때까지 약 7개월 동안 홈스쿨링 가정에 대한 관리 감독이 단 한 번이라도 이뤄졌다면 최 군의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다.

○ 학대 부모의 핑계로 악용된 홈스쿨링

최근 연달아 불거진 아동 학대 사건의 가해 부모들은 홈스쿨링을 핑계로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4년 만에 드러난 충북 청주시 안모 양(사망 당시 4세) 사망 사건에서도 안 양의 부모는 이미 숨진 딸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겠다고 거짓말을 하다 학교가 출석을 요청하자 “홈스쿨링을 하겠다”고 둘러댔다. 지난해 12월 인천에서 굶주림과 폭행에 시달리다 맨발로 탈출한 ‘16kg 소녀’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홈스쿨링이 학대를 은폐하는 데 악용돼 온 것은 홈스쿨링에 대해 아무런 관리 감독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홈스쿨링은 현행법상 불법이지만 암묵적으로 허용돼 왔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질병, 발육 부진 등 법에서 정한 사유가 아니면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자녀를 보내지 않을 경우 과태료 100만 원을 부과한다. 하지만 과태료를 물린 사례는 지금까지 한 건도 없다.

국내 홈스쿨링 가정은 60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가정의 자녀들은 정원 외 관리 대상으로 분류된다. 교육 당국이 관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실제로 그동안 홈스쿨링 가정에 대한 정부 차원의 실태 조사나 관리 감독은 전무했다.

최근 교육 당국과 경찰이 장기 결석 및 미취학 아동에 대한 일제 점검에 나섰지만 소재 파악과 안전 확인에만 집중하고 홈스쿨링 가정에서 제대로 교육하고 있는지는 조사하지 않고 있다.

아동복지법은 부모 등 보호자가 아이의 교육을 소홀히 하는 행위를 ‘교육적 방임’으로 규정해 무겁게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홈스쿨링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도 교육적 방임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경찰과 아동 보호 전문 기관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서울의 한 경찰서는 이달 초 열 살, 열다섯 살 두 자매를 6년 넘게 학교에 보내지 않은 부모를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다른 학대는 없었지만 자매의 학력이 또래에 비해 낮다는 점을 근거로 교육적 방임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부모는 “홈스쿨링을 했기 때문에 교육적 방임이 아니다”라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 홈스쿨링 가정 모니터링 시급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해외처럼 홈스쿨링을 하는 아이도 1주일에 한 번은 등교를 시키면 교육적 방임이나 학대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정부가 정한 기준을 충족한 홈스쿨링은 의무교육으로 인정하고 상시적으로 관리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1985년 홈스쿨링이 합법화된 미국에서는 정부가 홈스쿨링용 교재나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교육 공무원이 주기적으로 가정을 방문한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법에서 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부모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법 집행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지만 당장 해결책을 내놓을 계획은 없는 듯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금은 아동의 안전을 확인하는 게 급선무”라며 “홈스쿨링 문제는 그 후 실태 조사와 여론 수렴을 거쳐 제도를 보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아동#학대#홈스쿨링#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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