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과 맑은 공기, 되돌아갈 생각 없어”… 3040의 脫서울 사연 들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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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인구감소 대책 첫 마련]

“딸이 다니는 학교에 운동장이 없었어요.”

대기업 부장인 박진영 씨(48)는 20년간 살던 서울 성동구 행당동을 5년 전 떠났다. 새로 마련한 보금자리는 경기 성남시. 대학 입학 때부터 서울을 떠나 살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그였다. 하지만 초등학생 딸과 입학을 앞둔 아들이 제대로 뛰어놀 곳조차 없는 도시에서 사는 모습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깨끗하지 못한 서울의 공기 탓에 아들의 비염이 악화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박 씨는 경기 성남시 서판교 단독주택 부지에 3층짜리 ‘땅콩집’(작은 부지의 건물 한 채에 두 가구가 거주하는 형태)을 지었다. 박 씨의 출퇴근 시간은 20분에서 1시간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서울에 살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집 앞 텃밭을 가꾼다. 둘째의 비염도 한결 좋아졌다. 그는 “다시 서울로 갈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서울을 떠난 사람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박 씨처럼 더 나은 선택지를 찾아 자발적으로 떠나기도 하지만 서울이 자신을 받아주지 않아 밀려나는 경우가 더 많다. 김모 씨(32)에게도 서울은 꿈의 도시였다. 2003년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한 그는 선배들처럼 양복을 입고 도심 빌딩 숲을 누비는 모습을 상상해왔다. 하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오랫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번번이 쓴잔을 마셨다. 마음이 조급해져 여러 기업에도 입사 원서를 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더 이상 부모님에게 자취방 월세를 받고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결국 지난해 6월 고향인 경남 함안군으로 내려갔다.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다시 고향에 돌아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그에게 ‘서울 재입성’은 기약 없는 얘기다.

일자리가 없어 서울을 떠나는 건 비단 청년층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모 씨(52)는 서울 노원구에서 유통업을 하다가 지난해 6월 충남 금산군으로 귀농했다. 또래들이 퇴직 후 마땅한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게 몸은 고돼도 마음은 편해지는 길이라 생각했다. 이 씨는 “친구들이 퇴직한 뒤 구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허드렛일이나 아파트 경비 정도였다”며 “시골에 사는 게 외롭고 허전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귀농이 낫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 씨는 올해 첫 수확을 앞두고 있다.

황태호 taeho@donga.com·송충현 기자
#서울#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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