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제동원역사관’의 존재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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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휘 부산경남취재본부장
조용휘 부산경남취재본부장
부산 남구 당곡공원의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평화와 인권의 상징물로 지난해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에 문을 열었다. 정부가 지은 국내 유일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역사자료관이다.

아직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곳에 지난달 31일 일본인 히라노 노부토(平野伸人·70) 씨가 찾아왔다. 그는 역사관 개관 이후 첫 일본인 방문자였다. 현재 나가사키(長崎) 평화활동지원센터 소장인 그는 일본의 양심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이날 신분을 밝히지 않고 역사관 측에 일본어 해설 통역만 요청한 뒤 변호사 두 명과 함께 방문했다. 해설을 맡은 역사관 직원도 이 사람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제1상설전시실 끝에 있는 ‘일본, 양심의 목소리’ 벽면을 마주하고서야 사진 속에 미소 짓고 있는 노신사가 바로 곁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코너는 일본 정부의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고 소송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일본인 양심가 18명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사진 앞에서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가 매우 우려됩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 역사관 건립 당시부터 관심을 가졌다는 그는 “역사관 안에는 가슴 아픈 역사 기록물이 많다”며 “원폭 피해만큼 강제동원 피해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1986년 나가사키 현 피폭 2세 교직원회를 결성한 뒤 재한 피폭자 지원 활동을 벌이면서 한국과 인연이 닿았다. 이후 원폭 피해자를 돕는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성금 전달과 소송 진행 등을 위해 한국을 찾은 것만도 지금까지 300회를 넘는다. 이번에도 원폭 피해자 관련 소송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부산에 왔다가 역사관을 찾았다.

가해자의 과오와 역사를 일깨우는 일본인의 단순한 방문이었지만 우리를 뒤돌아보게 하는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역사관 관리 주체를 놓고 갈등을 빚다 완공 1년 7개월 만에 문을 연 것은 제쳐 두더라도 개관 이후 역사관 운영 행태는 실망 그 자체다. 역사관 운영 위탁기관 선정 문제는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발령이 늦춰지자 공모 인력 3명이 벌써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해설 인력 확보도 문제다. 역사관을 소개하는 홈페이지도 7월경에나 구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시관을 둘러보며 휴식을 취할 편의시설도 없다. 안전시설은 아직도 보강 작업 중이다. 방문객이나 강제동원 유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교통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을 끌어들일 콘텐츠는 이제 겨우 마련 중이다. 주무 부처인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일부 유족과의 법정다툼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제 마무리가 된 만큼 역사관 운영을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말 한일 위안부 문제 협정이 타결됐지만 일제 침략의 과거는 우리에겐 여전히 잊어선 안 될 아픈 역사다. 일본의 기본자세도 바뀌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초중고교생은 해마다 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제대로 운영돼야 할 이유다.

조용휘 부산경남취재본부장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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