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주경철]스핑크스 같은 한국 교육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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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 만난 오이디푸스, 난제 풀어 왕 됐으나 추방당해
하나 끝나면 더 큰 난제 닥쳐… 정답보다 문제해결능력 중요
실수 않는 기술만 강요하는 ‘대학 입시’는 괴물… 이대로 교육 망하게 둘 건가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점심때는 두 발로 걷다가,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은 무엇인가?

사람 얼굴에 사자 몸통, 독수리 날개에 뱀 꼬리를 한 괴물 스핑크스는 테베의 앞산에 앉아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이 수수께끼를 던진다. 만일 나그네가 수수께끼를 못 풀면 스핑크스에게 잡아먹히고, 수수께끼를 풀면 스핑크스가 죽는다. 가히 목숨 걸고 풀어야 할 난제인데, 신화에 의하면 수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풀지 못해 괴물에게 잡아먹혔다. 물론 답은 인간이다. 아기 때는 기어 다니고 조금 크면 두 발로 서서 걷지만 늙어서 노인이 되면 지팡이를 짚고 다니기 때문이다.

이 수수께끼가 묻는 바는 무엇일까? 진정 알기 힘들고 신비에 싸인 것은 바로 우리 자신, 혹은 우리 인생이라는 것 아닐까? 많은 사람이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가 하는 괴물 같은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인생에 잡아먹힌다. 그렇지만 용기를 가지고 달려들어 답을 구하는 순간 괴물은 곧 사라진다. 오이디푸스는 이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왕이 된다. 그렇지만 하나의 문제를 푸는 순간 곧 더 큰 난제가 닥치고, 결국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스스로 파내고 추방자 신세로 전락한다.

그에게 영원한 ‘어둠’의 형벌을 준 신은 ‘광명’의 신 아폴론이다. 삶은 그야말로 역설의 연속인가. 그는 대왕으로서 온 국민을 불행으로부터 구해주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문제 하나 풀지 못하고 비참한 상태로 몰락한다. 그런데 그의 파멸이 사전에 신이 정한 운명이었다면 오이디푸스에게는 무슨 잘못이 있으며, 그는 도대체 왜 그런 가혹한 형벌을 당해야 하는가? 질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인문학 캠프에서 고등학생들 100명과 함께 하루 종일 이런 문제를 놓고 토론했다. 운명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런 것들은 2500년 전에 그리스인들이 던진 물음이지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문제다. 물론 굳이 그런 질문을 스스로 제기하지 않고도 그럭저럭 살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진정 의미 있게 살고자 한다면 반드시 맞닥뜨려야 하는 물음이다.

다음으로는 세계의 언어 문제, 그리고 이와 연관하여 지구촌 빈곤 문제에 대해서 논의했다. 소수언어들이 2주마다 하나꼴로 사멸되어 금세기 안에 전 세계 언어의 절반이 소멸될 것으로 예상된다. 왜 그토록 급속도로 언어 소멸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것이 인류에게 어떤 문제를 야기할 것인가? 문자가 없는 민족에게 우리의 문화유산인 한글을 이용해 문자 체계와 교과서를 만들어 주고 언어 교육을 지원하여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사실 고등학생 수준에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높은 수준의 답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아직 배경 지식이 충분치 않아 때로는 난센스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정답을 찍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깊은 사고의 경험을 해보는 것이다. 하루 종일 읽고 토론하고 발표해 보며 아이들은 뿌듯해했고 행복해 보였다. 저녁에는 한층 어른스러워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앞으로 이 학생들을 기다리는 것은 입학시험이라는 괴물이다. 그것은 삶에 대해, 공동체에 대해, 세계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하고 깊은 사유의 경험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한 문제 틀리면 위험하고 두 문제 틀리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각박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실수하지 않는 기술을 부지런히 연마 중이다. 그러니 스스로 문제를 던져보며 여유 있게 큰 그릇으로 성장하는 대신 남들이 낸 조잡한 문제에 미리 정해진 답을 찾으려 할 뿐이다. 우리 아이들을 이런 식으로 키우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누구의 소유물이 되기에는, 누구의 제2인자가 되기에는, 또 세계의 어느 왕국의 쓸 만한 하인이나 도구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고귀하게 태어났다.”(셰익스피어 ‘존 왕’) 우리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스핑크스#오이디푸스#입학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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