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기록의 조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이현두 스포츠부장
이현두 스포츠부장
‘가난한 집에서 효자 난다’는 말처럼 국내 프로야구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인 넥센에도 효자가 많다.

올해 메이저리그 도전에서 희비가 엇갈린 박병호와 황재균도 그들 중 한 명이다. 2005년 LG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박병호는 넥센으로 옮겨 뒤늦게 꽃을 피웠다. 2011년 시즌 도중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박병호는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50홈런을 돌파하며 대한민국 홈런왕이라는 후광을 등에 업고 메이저리그에 손쉽게 입성했다. 박병호는 그 보답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키게 해준 제2의 친정 팀 넥센에 1285만 달러(약 147억 원)를 안겨줬다. 구단 1년 운영비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그런 점에서 황재균은 박병호보다 앞선 ‘원조 효자’다. 2006년 넥센의 전신인 현대에 입단해 일찍 주전 자리를 꿰찬 황재균은 2010년 시즌 중 롯데로 트레이드됐다. 박병호가 넥센으로 오기 1년 전이었다. 당시 야구계에서는 살림살이가 쪼들리던 넥센이 돈을 받고 황재균을 팔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넥센도 굳이 부인하려 하지 않았다. 박병호처럼 황재균도 올해 제2의 친정 팀에서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올해 몰라볼 정도로 근육을 키운 황재균은 자신의 프로 통산 한 시즌 최다인 26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지난해보다 홈런을 14개나 더 때려내며 힘 있는 타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박병호와 달리 황재균을 불러주는 메이저리그 팀은 없었다. 강타자에 수준급 수비력까지 갖춘 3루수여서 메이저리그의 벽을 충분히 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말 그대로 장밋빛 꿈에 그쳤다.

박병호와 황재균에 대한 메이저리그의 상반된 대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기록에 대한 신뢰도였다고 한다.

미네소타가 박병호를 영입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박병호가 국내 프로야구에서 세운 홈런 기록이었다. 한국에서 터뜨린 홈런의 절반 정도를 메이저리그에서 충분히 때려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과거와 달리 메이저리그도 국내 프로야구의 기록을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넥센의 또 한 명의 효자인 강정호의 역할이 컸다. 지난해 박병호와 함께 넥센에서 뛰며 홈런 40개를 쳤던 강정호가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홈런 15개를 때려낸 것이 박병호의 홈런 기록에 대한 신뢰를 높여준 것이다.

반면 지난해보다 껑충 뛴 황재균의 홈런 기록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위기가 더 많았다. 롯데의 팀 홈런이 지난해 121개(128경기)에서 올해 177개(144경기)로 30%나 증가한 것이 불신을 불러왔다. “혹시 공이나 배트의 반발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고 한 메이저리그의 한 스카우트 말처럼 실제로 롯데가 올해 사용한 공인구는 반발력 초과로 문제가 됐었다.

황재균으로서는 억울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투수와 타자가 상대하는 종목의 특성 상 야구에서는 기록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마운드의 높이다. 투수 마운드의 높이를 1인치만 낮춰도 타자들의 타율은 크게 올라간다. 국내 프로야구의 타고투저(打高投低·타자는 강하고 투수는 약한 현상)를 개선하기 위해 마운드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하지만 황재균의 사례에서 보듯이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투수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진 국내 환경이 국제무대에서는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사교육을 근절시키겠다며 물수능 논란이 일 정도로 쉽게 출제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똑같은 우를 범하지 않을까 두렵다.

이현두 스포츠부장 ruchi@donga.com
#넥센#박병호#황재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