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내가 낸 돈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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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기부시대 열린다]<下>사회가 함께 만드는 ‘착한 나눔’

“아이들이 밥도 못 먹고 있습니다. 기부 좀 해주세요.”

지난해 10월 전국 시골 면단위 마을 이장과 부녀회장, 새마을지도자 등 2400여 명에게 이런 내용의 전화가 걸려 왔다. 자신을 ‘불우아동을 돕는 기부단체 A본부 회원’이라 소개한 상대방은 “방학 기간이라 급식도 못 챙겨 먹는 아동들이 많다”며 기부금으로 6만 원씩을 요구했다. 자식뻘 되는 학생들이 굶고 있다는 얘기에 시골 주민들은 기꺼이 쌈짓돈을 꺼냈다.

하지만 기부금은 아이들의 후원비로 쓰이지 않았다. 시골 주민들이 십시일반 보낸 돈이 대부분 A본부 직원들의 개인 비용으로 사용된 사실이 올 7월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진 것. 적발된 A본부 대표 이모 씨(52)와 모금 업무를 담당한 텔레마케터 10명은 기부금 1억6000여만 원 중 1억2000여만 원을 월급과 수당으로 나눠 가졌다. 특히 이 씨는 자신의 개인 카드대금을 갚는 데 쓰기도 했다.

○ 나눔문화에 찬물 끼얹는 ‘기부 사기’

사람들의 온정을 악용한 ‘기부 사기’는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다. 주로 연말연초나 명절 등 소외된 이웃에 관심이 집중되는 시기에 발생한다. 이달 20일에도 경기 고양시의 한 장애인 후원단체가 텔레마케터 11명을 고용해 11억5000여만 원을 기부받은 뒤 직원들과 나눠 가진 사실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런 기부 사기는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나눔문화에 찬물을 끼얹는다. 성실하게 기부금을 받아 사용하는 다른 기부단체도 “한통속이다”며 싸잡아 비난받기 때문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기부 경험이 있는 19세 이상 성인 78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기부단체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점으로 ‘기부단체의 투명성’(56.3%)을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기부단체 지정에서 지정 후 관리까지 대부분 서류로만 점검이 이뤄지는 허술한 관리체계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비영리단체가 ‘지정기부금단체’가 되기 위해선 해당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검토하는 과정에 현장실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필요한 자산이나 규모, 회계 관련 규정도 없다. 다만 설립 이후 기부금 운영 실태를 국세청 등에 보고하면 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름과 금액만 적어 놓은 서류로 대체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 이제 기부자가 ‘착한 기부단체’ 찾아야

기부단체의 탈선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5월 미국암기금, 암지원서비스, 미국아동암기금, 유방암협회 등 4개 암 자선단체 직원들이 2008∼2012년 1억8700만 달러(약 2113억여 원)의 기부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사실이 적발됐다. 이곳 직원들은 텔레마케팅 등으로 거둬들인 암 환자 돕기 성금을 체육관 등록비, 콘서트 티켓 구매 등 개인 비용으로 사용했다.

미국은 보완책으로 국세청이 비영리단체에 표준재무신고 양식(Form990)을 받아 연 수입과 지출, 운영 사업, 투자 내역 등 운영 사항을 검증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또 미국의 자선단체들이 모여 만든 미국자선협회에서는 ‘모르는 단체에 기부하지 마라’ 등 10가지 행동강령을 홈페이지 등에 게재해 기부자들 스스로 성실한 기부단체를 찾을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감시관리 제도의 도입도 필요한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부자들 스스로도 어느 단체가 믿을 만한지 직접 확인하고 스마트하게 기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기부단체 지정 여부 △기부활동 성과 △인적 구성 △재정운영 투명성 등을 꼼꼼히 살피라고 당부한다. 기부단체의 홈페이지나 안내서(브로슈어) 등에는 법적 자격 요건과 법인등록 번호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단체 대표가 과거 어떤 활동을 했던 사람인지, 이사회는 재정 운영 등을 어떻게 감독하고 관리하고 있는지 그 기준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장윤주 아름다운재단 연구교육팀장은 “일정 규모 이상의 기부단체는 자체 홈페이지 등에 재정 운영 내역을 상세히 공개하고 있으니 이를 자세히 살펴 결정해야 한다”며 “처음에는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단체에 작은 금액을 기부하고 실제 그 단체의 활동 등을 주시하다가 믿음이 생기면 큰 금액을 기부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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