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천안함 폭침후 백령도의 비경 화폭에 담았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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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숙 해반문화사랑회 이사장, ‘평화미술프로젝트’서 5년째 활동
16일부터 인천아트플랫폼서 전시회… 두무진 풍경화 등 100여점 출품

최정숙 이사장의 아버지 형상으로 떠오른 백령도 두무진 풍경화.
최정숙 이사장의 아버지 형상으로 떠오른 백령도 두무진 풍경화.
‘백령 진촌 886.’

16∼21일 100년 전 창고를 예술가 창작공간으로 개조한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관에서 열리는 최정숙 해반문화사랑회 이사장(61·화가·사진)의 전시회 이름이다. 그의 고향집이 있는 인천 옹진군 백령도 본적 주소이기도 하다.

서해 최북단 섬인 백령도는 대청해전, 천안함 폭침 사건 등 남북대결이 수시로 벌어지는 지역이지만 두무진, 콩돌해안, 사곶천연비행장 등 기암절벽과 천연기념물이 즐비한 곳이다. 최 이사장은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5년째 백령도를 화폭에 담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고향의 진수를 새롭게 발견했다. 그는 2011년 인천문화재단의 ‘평화미술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화가 설치미술가 행위예술가 문학가 등 60여 명의 다른 예술인과 함께 백령도를 찾기 시작했다.

“고향에 자주 다니다 보니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있는 백령도 앞바다가 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분쟁의 바다’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오더군요. 다른 작가들과 백령도를 ‘평화의 바다’로 만드는 작업을 하다 문득 내 가족사가 남북 분단사임을 자각하게 됐죠.”

최 이사장의 어머니는 북한 황해도 장산곶에서 자라 지척인 백령도로 시집왔다. 백령도 토박이인 그의 아버지는 광복 이후 백령도 면장을 맡아왔기 때문에 6·25전쟁 때 북한군의 총살감이었지만 극적으로 생명을 건졌다. 전쟁이 터지기 직전 필요한 교육 재료를 사기 위해 인천 뭍으로 나갔다가 뱃길이 끊겨 1950년 9·28 수복 이후 섬으로 돌아왔던 것.

“북한군 점령 3개월 사이 백령도 유지들은 거의 몰살당했어요. 아버지도 수배 대상이어서 가족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지요.”

전쟁 이후 백령도엔 피란민이 들끓었다. 최 이사장 아버지는 이들의 정착지를 마련하는 간척사업을 지휘하다가 과로사했다. 인천시사에서는 아버지 최경림 씨(1921∼1970)의 공적을 ‘280정보 개간사업을 펼쳐 피란민 300가구의 정착지를 마련하고 백령중학교 설립, 천주교 보급에 앞장섰다’고 기록하고 있다.

최 이사장은 백령도를 무대로 한 200여 점의 작품 중 100여 점을 전시한다. 이 중 경관이 빼어난 두무진 앞바다가 무겁고 어둡게 그려졌다. 그는 “어릴 적 18시간씩 배를 타고 섬으로 오갈 때 심한 뱃멀미를 했고 모든 걸 삼킬 듯한 칠흑 같은 바다를 지켜봤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감히 아름답다 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두무진의 거대한 바윗덩이가 마치 아버지를 연상케 해 ‘아버지의 바다’라고 정한 작품도 있다.

그는 백령도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들을 드로잉, 회화, 사진, 동영상 등에 낱낱이 담아두었다. 인천문화재단이 예술가 창작 거주공간(레지던스)을 꾸미기 위해 개축공사 중이던 옛 백령병원에서 주운 심전도 검사용지에 백령도 풍경을 펜으로 드로잉한 작품이 50여 컷이나 된다. 길이 23m의 용지에 오래된 가게, 면사무소, 학교, 꽃, 대장간 굴뚝, 바다 등을 세밀하게 그려놓았다.

또 자신이 자라던 고향집이 허물어지는 현장을 지켜보면서 철거 전후의 모습도 여러 작품으로 남겼다. “섬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 많아 마음이 아팠어요. 눈물과 부활을 상징하는 노란색 잎의 나무를 통해 이런 것들을 기려 보았습니다.”

최 이사장은 1994년 해반문화사랑회를 창립했고 문화포럼, 문화재 답사기행, 향토자료 발간, 근대문화재 둘레길 개발, 문화재지킴이 육성 등 지역 문화운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제60회 해반문화포럼이 28일 오후 6시 부평아트센터 세미나실에서 ‘강화 국방유적을 세계유산으로’라는 주제로 열린다. haeban.org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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