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경 삼일로창고극장 대표(56)는 17일 “한국 연극사에 큰 의미가 있는 극장이기에 어떻게든 지켜보려고 했으나 더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수익 창출이 어려운 구조라 힘든 결정을 내리게 됐다”며 “내년 건물주가 이 건물을 개축하겠다고 해 공사 직전까지만 극장을 운영하고 이후 폐관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1970년대 중반 소극장 운동을 이끌었던 또 하나의 대표 공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당시 소극장 연극의 중심이 된 민간 소극장인 공간사랑, 민예소극장, 실험극장소극장, 엘칸토소극장, 중앙소극장 등은 이미 폐관됐다.
서울 중구 삼일대로 9길, 옛 삼일고가도로 남단 주택지대 한쪽 끝에 위치한 삼일로창고극장은 1975년 개관했다. 165.3m²(약 50평) 남짓한 100석 규모의 이 극장은 1976년 고 추송웅이 모노드라마 ‘빠알간 피터의 고백’을 초연한 곳이다. 이 모노드라마는 32일 만에 1만3000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기록을 남기며 연극계 1인극 열풍을 불러왔다. ‘티타임의 정사’ ‘유리동물원’ 등 지금까지도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 작품도 모두 삼일로창고극장 무대에서 초연됐다.
삼일로창고극장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연중 무휴 공연과 제작 PD시스템을 도입해 많은 연출가를 길러냈다. 고 이원경을 비롯해 강영걸 오태석 등의 연출가와 박정자 전무송 윤여정 유인촌 윤석화 등 많은 배우들이 삼일로창고극장 무대에서 데뷔하거나 활동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후 여러 차례 폐관 위기를 겪었다. 2011년 태광그룹 후원으로 명맥을 이어갔지만 2013년 10월 지원이 끊긴 뒤 한 달에 330만 원인 임차료도 1년 넘게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소극장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 대표는 “유서 깊은 극장을 지키고 싶어 사재까지 털어 넣는 등 노력을 했지만 작년에 9편의 작품을 올리고 빚을 1억8000만 원이나 졌다”며 “훗날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다른 지역으로 옮겨서라도 창고극장 이름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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