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들린 교육재정… 쪼그라든 졸업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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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부족에 교부금 축소 예고되자… 기념품-행사 없애고 졸업장만 수여
“학교 현장 몰라도 너무 몰라” 원성

“죄송하지만 저희 학교 졸업식은 취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너무 볼품이 없어서….”

6일 졸업식이 열린 서울의 한 중학교는 전날 기자의 졸업식 취재 문의에 예상 밖의 대답을 했다. 이 학교는 서울시교육청이 선정한 ‘졸업식 취재 지원학교 명단’에 들어 있었다. 졸업식을 담당한 부장교사는 “학교 사정이 어려워 지난해보다 예산을 200만 원 정도 줄여 100만 원으로 졸업식을 치르게 됐다”며 “지난해는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기념품도 나눠 주고 이것저것 행사도 했는데 올해는 졸업장만 수여하고 일찍 돌려보내기로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교사는 “학교운영비도 30%가량 줄었는데 정부가 지방교육재정교부금까지 줄인다고 해서 연초부터 허리를 졸라매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정부가 “지방교육재정이 방만하게 운영됐다”며 교부금 축소를 예고한 가운데 일선 학교현장에서는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수년째 재정난이 계속되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교부금 축소 방침까지 발표되자 교사들 사이에서는 “대통령이 학교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원성이 나오고 있다.

6일부터 시작된 서울지역 주요 초중고교 졸업식만 해도 지난해보다 규모가 눈에 띄게 줄었다. 예년 같았으면 시화전, 사진전, 기념품 배포, 축하공연 등 4, 5개 프로그램으로 ‘축제의 장’이 됐을 졸업식이 올해는 대부분 1, 2개 프로그램으로만 진행됐다. 지난해 졸업하는 모든 학생에게 기념품을 나눠 준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올해 기념품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일부 학교는 돈이 들지 않는 ‘학교 동영상 시청’ 등으로 프로그램을 바꾸기도 했다.

학교를 운영하는 교장들은 쪼들리는 학교 운영 실태를 호소했다. 서울지역의 한 공립고 교장은 “쉽게 말해 모든 비용을 줄이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교사 출장비, 특근비는 물론이고 아이들 체험활동 예산, 야외활동 예산도 줄줄이 줄였다”고 말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시설 보수도 뒤로 미뤘다. 한 초등학교 교장은 “학교환경 개선비와 인건비 예산을 각각 잡아놨는데 기본운영비가 삭감되면서 인건비로 줄 돈이 모자라게 됐다”며 “시설 보수 예산을 인건비로 집행해 학생들은 타일이 깨지고 수도꼭지가 고장 난 화장실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고교 교사는 “난방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기온이 영하만 아니면 난방을 꺼 아이들이 교실에서 두꺼운 점퍼를 입고 수업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부의 교부금 감축이 일반고와 자율형사립고 간에 교육환경 양극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일례로,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재단예산으로 운영되는 서울 자사고인 배재고의 지난해 예산은 116억 원이다. 역시 자사고인 세화고는 128억 원. 반면 교부금으로 운영되는 일반고인 서초고는 28억 원, 석관고는 30억 원이었다. 올해 서울시교육청은 각 학교기본운영비를 평균 8%씩 줄였다. 학교당 평균 4100만 원에 이르는 금액이다.

정부의 교부금 축소가 지방교육재정 축소로 이어진다면 이 격차는 더욱 늘어날 개연성이 크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동석 대변인은 “지방교육재정 축소는 인적자원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파국으로 이끌 수도 있는 정책”이라며 “정부가 공교육 발전에 대한 국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교육재정#예산#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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