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수도권]서초 판자촌에 안전지도… 화재대피-구조 시름 덜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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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골목길-소화기 위치 등 한눈에… 방배동 전원마을에 첫 설치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전원마을에서 열린 ‘울타리 안전지도’ 기공식에서 서초구 직원이 주민들에게 재난 대피 요령 등을 설명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scoopjyh@donga.com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전원마을에서 열린 ‘울타리 안전지도’ 기공식에서 서초구 직원이 주민들에게 재난 대피 요령 등을 설명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scoopjyh@donga.com
‘대한민국 최고 부촌’으로 알려진 서울 서초구. 하지만 이곳에 ‘무허가 판자촌’이 7곳이나 되고 893명이 살고 있다는 건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 지역은 국가로부터 정식 마을로 인정받지 못해 화재 수해 등 각종 재난에 취약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판자촌 안전지도’가 만들어졌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지하철 4호선 남태령역 근처 ‘전원마을 판자촌’(138명 거주)에서 ‘울타리 안전지도’ 준공식이 열렸다. 폭 1.8m, 높이 2m의 대형 전광판으로 제작된 안전지도는 구불구불 어지럽게 뻗은 마을 골목 입구에 세워졌다. 지도는 노인도 쉽게 읽을 수 있게 큼지막한 글씨와 그림으로 채워졌다. △복잡한 골목길 △가구별로 각기 다른 집 구조와 대문 입구 위치 △비상시 대피 공터 △소화기 및 소화전의 위치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마을 주민 10여 명은 내내 “고맙다” “안전지도 덕분에 마을이 훤해졌다”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지금껏 정부도 만들지 않았던 판자촌 안전지도를 서초구가 직접 만든 이유는 지난해 11월 9일 이웃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재 때문이다. 이 불로 구룡마을에서는 70대 노인 1명이 사망하고, 이재민이 무려 136명이 발생했다. 마을 골목이 복잡하고 소방차 진입조차 여의치 않았던 탓이다.

이에 따라 서초구는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 관내 무허가 마을 전체를 조사해 각 마을의 특성과 주민 현황을 담은 안전지도를 만들었다. 이 데이터베이스(DB)는 관내 소방서, 경찰서 등과 공유된다. 외부 용역업체에 안전지도 제작을 맡기지 않고 서초구 직원들이 직접 진행한 덕분에 비용도 400만 원 이내로 크게 절감했다.

판자촌 안전지도의 탄생을 가장 반긴 건 주민들과 관내 소방서 직원들이다. 주민 윤재영 씨(73·여)는 “10여 년 전 화재로 옆집 10대 자매가 한꺼번에 세상을 떠난 뒤 안심하고 잠을 잔 적이 없다”면서 “이제야 발을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뻐했다.

배상관 방배119안전센터장은 “판자촌은 한 번 사고가 나면 무조건 대형 피해로 이어졌는데 이젠 안전지도가 있어 주민 구조작업이나 방재 활동이 훨씬 수월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구는 2월 말까지 관내 최대 판자촌인 방배동 성뒤마을(238명 거주)과 내곡동 헌인마을(227명 거주), 잠원동 체비지(137명 거주) 등에도 안전지도를 제작해 설치할 계획이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서초 판자촌#안전지도#방배동 전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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