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장소팔 만담엔 서울토박이말-생활상 오롯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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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토박이회, 만담집 펴내
소리꾼-풍물패 오가던 중구… 100여년 만담가들의 무대 각광
“서울말의 寶庫후세에 전해야죠”

중구토박이회 회원들이 서울 중구 다산교 ‘장소팔 동상’ 앞에서 새로 펴낸 만담 책자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앞줄 왼쪽이 만담가 장소팔의 아들 장광팔 씨다. 중구 제공
중구토박이회 회원들이 서울 중구 다산교 ‘장소팔 동상’ 앞에서 새로 펴낸 만담 책자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앞줄 왼쪽이 만담가 장소팔의 아들 장광팔 씨다. 중구 제공
“내 한 가지 물어보겠는데 바닷물이 왜 시퍼런지 아슈? 유구한 세월 몇백 년을 두고 바람 불 적마다 파도 칠 적마다 바위에 철썩, 철썩 부딪쳐 멍이 들어 시퍼렇습니다.”(장소팔·본명 장세건·1922∼2002)

“그럼 제사상에 돼지 대가리가 놓였는데 보니까 씽긋 웃고 죽었거든요. 왜 씽긋 웃고 죽었을까요? 칼로 목을 베는 바람에 너무 목이 간지러워서 씽긋 웃고 죽었다고요.”(고춘자)

서울 중구에서 60년 이상 산 토박이들이 모인 ‘중구토박이회’는 최근 350페이지짜리 책 한 권을 펴냈다. ‘장소팔 만담’이라는 책자다. ‘중구 토박이들이 웬 만담?’ 하고 의아할 수 있지만 ‘만담’은 1900년대부터 100년 이상 서울을 배경으로 이어져온 서울의 전통 문화 중 하나다. 서울 토박이 말투와 생활상이 오롯이 담긴 소중한 문화이지만 잊혀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토박이들이 보존을 위해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중구토박이회 장광팔 고문(62)은 “경상도, 전라도 등 지방 토박이말은 잘 보존됐지만 서울 토박이말은 학문적으로도 정리가 안 돼 있고 소외된 게 현실”이라며 “옛 ‘국민만담가’들의 이야기를 모아 당시 서울 토박이들의 문화상과 말투를 후세에 남기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만담가 신불출의 ‘선술집과 인생’ ‘익살맞은 대머리’ 등은 모두 서울이 배경이고, 윤백남과 이애리수의 ‘사설 방송국’, 윤백남의 ‘동물원’, 김서정과 김순옥의 ‘바람쟁이 전차차장’ 등도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서울 토박이 말투가 잘 드러나는 만담으로 꼽힌다. 앞서 중구 토박이들은 만담을 발굴, 보존하자는 취지로 장소팔 선생이 타계한 지 7년 되던 2009년 겨울 흥인동 162-1 청계천7가 다산교 앞에 장소팔 동상을 설치하기도 했다.

중구는 예부터 소리꾼과 풍물패가 오가던 곳으로 유명해 서울에서도 만담의 중심지로 역할을 했다. 국민만담가로 꼽혔던 장소팔은 1922년 인사동에서 태어나 중구 신당동에서 활동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만담의 뿌리인 박춘재도 1886년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서 태어나 중구 일대에서 활동했고 장소팔의 아들인 장 고문 역시 중구 토박이다. 1999년 결성돼 현재 192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중구토박이회가 서울의 전통문화인 만담 보존을 이들의 주요 역할 중 하나로 삼고 있는 이유다. 중구 관계자는 “만담은 ‘서울말의 보고’인 만큼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이라며 “토박이들이 낸 책자 판매대금은 중구의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기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토박이#만담#만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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