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물 긷다보면 웃음-눈물 한두레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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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in 서울]사연 깊은 종로구 우물들
선조들 희로애락 고스란히 담겨… 이야기 있는 관광코스 만들기로

서울 종로구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옛 우물’이 많이 남아 있다. 궁궐에서 사용하던 삼청로4길 복정우물, 슬픈 사랑이야기가 전하는 계동길 석정보름우물,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우물인 삼청로9길 성제정. 서울 종로구 제공
서울 종로구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옛 우물’이 많이 남아 있다. 궁궐에서 사용하던 삼청로4길 복정우물, 슬픈 사랑이야기가 전하는 계동길 석정보름우물,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우물인 삼청로9길 성제정. 서울 종로구 제공
‘인가가 많은 거리’를 뜻하는 ‘시정(市井)’이라는 말에는 ‘우물 정(井)’자가 들어 있다. 물이 귀하던 시절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은 우물은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자 소통의 공간이었다. 사람이 모여드니 우물마다 사연도 많다. 옛 도성의 중심이었던 서울 종로구에는 역사가 담긴 우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삼청동길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작은 골목에는 복정(福井)우물(삼청로4길 인근)이 있다. 물이 맑고 맛이 좋아 궁에서만 사용하던 우물이다. 평상시에는 뚜껑을 닫아 자물쇠를 채워두고 보초를 세워 일반인의 사용을 금했다. 1년에 한 번 정월대보름에는 일반인도 물을 길을 수 있었는데, 이 물로 밥을 지어 먹으면 일년 내내 행운이 따른다고 했다.

복정우물은 복을 준다는 의미를 되살리자는 주민들의 건의로 2011년 옛 모습을 되찾았다. 종로구는 남아 있는 석축을 바탕으로 과거의 모습을 복원해 지역주민들과 탐방객을 위한 쉼터로 조성했다.

북촌 한옥마을 기와지붕 사이의 가회동 석정보름우물(계동길 110)은 물맛이 좋기로 소문이 났다. ‘이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 궁녀들도 몰래 떠다 마시며 아이 낳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슬픈 이야기도 전해진다. 정조 8년(1784년) 우물물이 넘쳐 내막을 조사해보니 천민인 망나니의 딸이 병조판서의 서자에게 반해 상사병을 앓다 결국 그를 죽여 우물에 유기하고 자신도 뒤따라 투신했다.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드리자 범람은 멈췄지만 이후 물이 보름은 맑고 보름은 흐려져 ‘보름우물’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 우물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도 중요한 곳이다. 1794년 압록강을 건너온 최초의 외국인 주문모 신부가 1801년 새남터에서 순교하기 전까지 계동에 숨어 지내면서 조선 땅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고, 이 우물물로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인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도 이 물을 성수(聖水)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천주교 박해 당시 많은 순교자가 나오자 갑자기 물맛이 써져서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석정보름우물은 1987년에 한 차례 복원되었으나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돌로 채워진 우물을 지난해 다시 복원하고 안내판과 안전을 위한 투명 덮개를 함께 설치했다.

삼청공원 옆 주택가에 작은 기와를 이고 있는 성제정(삼청로9길 62)은 도교의 제사를 지내던 소격서(昭格署)에서 사용하던 우물이었다. 북두칠성에 제사를 올릴 때 이 우물물을 사용해 성제정(星祭井)이라 불렸다. 돌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물맛이 좋아 위장병에 특효가 있었다고 하며 정조 때는 수라상에 진상하기도 했다.

백호정(白虎亭·종로구 옥인3길 40)은 조선시대 무인들의 활터로 인왕산에 살던 병든 흰 호랑이가 활터 옆 작은 샘에서 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후 전국에서 약수통을 들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로 붐비기도 했다. 비록 지금은 마실 수 없지만 그 의미를 인정받아 올해 1월 문화재 지정이 예고됐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뒤편 주택가에는 백동우물(동숭나길 15 일대)의 흔적이 있다. ‘백동(柏洞)’은 동숭동의 옛 이름으로, 잣나무숲이 무성해 예로부터 맑은 물이 샘솟았다고 한다. 놀이터 옆 표지석으로만 남아 있는 백동우물터를 널리 알리기 위해 종로구는 표지석을 새로 설치하고 주변 환경도 정비할 계획이다.

종로구 관계자는 “우물과 각종 문화재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굴해 관광코스와 연계할 계획”이라며 “스토리텔링 관광으로 더욱 생생하게 선조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우물#시정#삼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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