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의 희망 ‘밥차’ 망하면 안돼” 홀몸 어르신 금니까지 건네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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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밥차’ 파산위기, 무슨일이

‘사랑의 밥차’를 운영하는 이선구 이사장(위쪽 사진 오른쪽)이 지난달 27일 인천 부평역 광장에서 홀몸노인들에게 무료 점심을 배식하고 있다. 위 사진은 홀몸노인들이 치아에서 떼어 내놓은 치아 보철용 금 등 각종 금붙이들이다. 금메달과 황금 열쇠는 설선옥 전 수서명화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이 퇴임하며 받은 것을 기부한 것이다. 인천=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사랑의 밥차’를 운영하는 이선구 이사장(위쪽 사진 오른쪽)이 지난달 27일 인천 부평역 광장에서 홀몸노인들에게 무료 점심을 배식하고 있다. 위 사진은 홀몸노인들이 치아에서 떼어 내놓은 치아 보철용 금 등 각종 금붙이들이다. 금메달과 황금 열쇠는 설선옥 전 수서명화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이 퇴임하며 받은 것을 기부한 것이다. 인천=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아흔의 할머니가 옷 속에 품은 하얀 봉투를 매만졌다. 너덜너덜한 봉투 가운데가 불룩했다. 지난해 12월 인천 부평역 광장. ‘사랑의 밥차’가 홀몸노인과 노숙인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다. 밥차는 소외계층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 사업. ‘사랑의 쌀 나눔 운동본부’가 2009년부터 시작했다. 부평역, 주안역, 서울역, 삼송역에서 매일(주말 제외) 500∼1000명, 연간 약 30만 명에게 점심을 제공한다.

할머니는 이선구 운동본부 이사장(61)에게 다가가 봉투를 내밀었다. “나한테 밥 주는 데는 여기밖에 없어요. 망하면 안 돼요.” 봉투 안에는 틀니가 들어 있었다. 틀니 사이에 쌀알 크기의 18k 금이 붙어 있었다. 할머니는 “금을 떼서 밥차 운영에 써달라”고 했다. 지난달 한 할머니는 고무줄로 끝을 동여맨 라면 봉지를 들고 나타났다. 봉지엔 금이 씌워진 치아가 뿌리째 들어 있었다. 최근까지 노인들이 건넨 치아 보철용 금은 9개. 치과에 가서 떼어 낸 것들이었다. “많이 어렵다고 들었어요. 우리는 나중에 틀니 하면 되니까….”

밥차가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밥차 운영에 드는 비용은 한 달 최소 5000만 원인데 후원금은 평균 400만 원 남짓이다. 밥을 짓는 인천 ‘밥차 본부건물’은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이사장은 “그 ‘식당’이 돈을 조금이라도 갚았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밥차의 불행은 1년여 전 시작됐다. 당시 밥차 본부는 경기 고양시에 있었다. 독지가의 배려로 무상으로 쓰던 곳이었다. 2012년 10월 7일 오전 1시 30분경 불이 났다. 본부 바로 옆 A식당에서 난 불이 기지와 밥차 트럭으로 옮겨붙었다. 건물은 물론이고 트럭, 대형 냉장고 10대, 쌀 등 1년 치 식재료가 모두 탔다. 건물과 트럭을 제외하고도 재산 피해가 3억 원이 넘었다.

무료 급식을 멈출 수 없었던 밥차는 지난해 초 인천의 한 건물을 매입해 이전했다. 전 소유주가 건물을 담보로 대출받은 9억 원을 이어받는 조건으로 2억5000만 원에 매입할 수 있었다. 보상을 받으면 월 500만 원에 이르는 대출 이자를 갚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하지만 A식당 측은 피해 보상을 하지 않았다. 이 식당은 직원 100명을 거느린 기업형 식당. 대지 3030m²(약 916평)에 건물 규모만 909m²(약 275평)에 달한다. 4개 건물에 컨벤션센터까지 갖춰 ‘식당 갑부’로 불린다.

식당 대표 김모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밥차가 보상금을 노리고 불을 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밥차 직원이 불이 난 시간 본부로 들어가는 동영상도 있다. 본부에서 불이 나 식당에 옮겨붙은 것”이라고 했다. 김 씨는 “경찰에 왜 동영상을 제출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고양경찰서와 고양소방서는 지난해 1월 내사종결 보고서를 통해 “내·외부 폐쇄회로(CC)TV와 화재 현장 등을 분석한 결과 대형 식당의 주방 내부에서 최초의 불꽃이 발생한 것으로 판독된다. 이 불로 주방 건물이 소실되고 밥차 창고 지붕 부위로 확대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방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CCTV 판독 결과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없었다”고 했다. 불에 탄 트럭은 보험 처리됐다. 보험사는 밥차 측에 트럭 수리비로 6000만 원을 지급한 뒤 이 돈을 A식당으로부터 받아내기 위해 지난해 초 민사소송을 냈다. 밥차 측은 재판 결과가 나오는 대로 3억여 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밥차가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공교롭게 어려운 시기에 기업 후원도 끊겼기 때문이다. SK그룹은 2010년부터 총 3억 원을 후원하다 2012년 말부터 후원을 끊었다. SK 관계자는 “다른 단체에도 형평성 있게 기부하려고 그런 것”이라고 했다. 2010년부터 4억여 원을 기부했던 대한주택보증도 후원을 끊었다. 밥차는 월 이자 500만 원을 3개월째 연체 중이다.

요즘 밥차를 돕는 사람들은 밥차가 있어야 하루 한 끼라도 먹을 수 있는 홀몸노인들뿐이다. 노인들은 동네를 돌며 폐휴대전화를 얻어와 이 이사장에게 내민다. 폐금속 수거업자에게 주면 한 대에 1000원을 받을 수 있어서다. 지금까지 모인 건 300대(30만 원)에 불과하다.

후원 신한은행 140-008-470070, 사랑나눔밥차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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