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너땜에 못산다” 선생님은 “닥쳐” TV선 “빡치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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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세상을 바꿉니다/동아일보-채널A 공동 연중기획]
<3>가정에서… 학교에서… 나쁜말에 포위된 아이들
중2 A군의 하루 들여다보니


“학교 안 가? 넌 애가 왜 그렇게 게을러 터졌니?”

늦잠을 잤다. 엄마의 날선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어제 밤늦게까지 친구와 휴대전화 메신저로 수다를 떤 탓이다. ‘어차피 지각인걸 뭐’ 하는 생각에 몸은 이불 속을 파고든다. “너 때문에 못 산다, 못 살아. 안 일어나?” 이불을 엄마에게 통째로 뺏긴 뒤에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방 꼴이 이게 뭐냐? 돼지우리도 여기보다는 낫겠다.” 식전 댓바람부터 한소리 지대로(제대로) 들었더니 짜증이 작렬이다.


미국 피츠버그대와 미시간대 연구진이 13, 14세 자녀를 둔 가정 976곳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자녀에게 가혹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고 답한 부모가 엄마는 45%, 아빠는 42%에 달했다. 장경희 한양대 교수(국어교육)의 ‘청소년 언어실태 언어의식 전국조사’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부모의 언어폭력 등으로 인한 가정 내 스트레스가 높아지면 비속어 사용 빈도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침도 거른 채 겨우 고양이 세수만 하고 아빠를 따라 집을 나섰다. 매일 출근길에 나를 학교까지 태워주는 아빠. 출근길 러시아워에 걸리자 운전대를 잡은 아빠의 손길이 거칠다. 결국 교차로에서 좌회전 차로로 슬쩍 끼어들기를 시도하는 아빠. 하마터면 앞으로 나오던 좌회전 차량과 사고가 날 뻔했다. “○○놈아! 죽고 싶어 환장했냐?” 아빠를 노려보는 아저씨. “뭐 이 새끼야? 니가 째려보면 어쩔 건데?” 역시 목에 핏대를 세우는 아빠. 우리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멋있었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김준홍 연구원의 ‘청소년의 민주시민 역량과 언어 환경이 욕설 행동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따르면 거짓말이나 속임수로 공공생활에서 호혜 규범을 위반하는 사람일수록 욕설의 정도는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타인에 대한 신뢰수준이 높을수록 욕설의 정도는 줄었다.

학교 수업시간. 뒷자리에서 쑥덕대던 친구들이 여자 수학 쌤(선생님)에게 딱 걸렸다. “야! 거기 뒤에 니들. 입 닥치지 못해?” “옆에 있는 놈들은 뭐가 좋다고 실실 쪼개고 있어?” 옆자리 짝꿍이 노트에 필담을 끄적여 내게 건넨다. “수학, 쟤는 왜 아침부터 지랄이니? 재수 없어!”

양명희 동덕여대 교수(국문학)의 ‘학교생활에서의 욕설 사용 실태 및 순화대책’ 연구에 따르면 교사를 지칭할 때 ‘이름이나 과목명’을 부르는 학생이 27.7%에 달했다. ‘별명’을 부르는 경우는 15%, ‘그놈, 그 자식, 그 새끼’ 같은 욕설을 쓰는 경우가 13.1%, ‘걔’라고 하는 경우도 12.2%였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비율은 18.6%. 지난해 한국교총의 자체 조사에선 조사대상의 절반이 넘는 교사(57%)가 “학생들의 욕설과 비속어를 매일 듣는다”고 답했다.

고대하던 점심시간. 급식을 먹고 친구들과 새로 나온 게임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같은 반 친구가 ‘안여돼(안경 쓴 여드름난 돼지)’의 구형 전화기를 갖고 ‘딴지(시비)’를 건다. “쩐다, DMB도 안 나오는 네 폰은 완전 쓰레기폰 아냐?” “자꾸 나 빡돌게(화나게) 하면, 네 얼굴에 구멍 내 버린다?”

중고교생 친구 사이의 대화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욕을 쓰는 목적에 대해 남학생은 ‘친근감을 드러내려고’, 여학생은 ‘순간적으로 기분이 상해서’라고 답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또 학생 3명 중 1명(32.6%)은 친구와 대화할 때 욕설 등 공격적 표현을 ‘거의 매번’ 쓴다고 답했다. ‘하루 한두 번’이란 대답은 32.6%.

종례시간. ‘담탱이’(담임선생님)의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우리 반 중간고사 성적이 우리 학년에서 뒤에서 세 번째라나? “반 평균 깎아 먹은 놈들, 기말 때도 요 모양이면 각오해!” “학교 끝나고 딴 길로 새는 놈들도 걸리면 사망이다!” 화난 거야 이해가 안 가는 바가 아니지만, 왜 저리도 방방 뜨는지. 누구는 뭐 시험 망치고 싶어서 못 봤냐고!

조한익 한양대 교수(교육학)는 “교사나 부모의 협박이나 비난 같은 부정적 의사소통 방식은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인 독려나 성적 향상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변화되었을 때의 좋은 점이 아닌 잘못을 지적하는 방식은 오히려 반항심만 키우고 의사소통의 단절을 불러온다”고 경고한다.

머리를 식히려고 PC방에 왔다. 오늘따라 게임 서버가 문제인지 자꾸 게임이 끊기자 친구도 나도 열이 받았다. “○○, 이 해충서버, ○○ 느리네.” 게임 채팅창은 욕설로 도배된 지 오래. 나도 한마디 해야 이 꿀꿀함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질 것 같다. “저 새끼들(다른 이용자)은 왜 나만 다구리질(집단구타)이야. 맞짱 한 번 깔까?” 서버가 살아나길 기다리며 인터넷에 뜬 축구 국가대표 한일전 예고 기사를 보는데 밑에 달린 댓글이 눈길을 끈다. “일본 원숭이 새끼들, 이번엔 확실히 밟아줘야 하는데….”

양명희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의 욕 습득 경로는 친구(47.7%)가 가장 많았지만, 그 다음이 인터넷(26.4%)이었다. 영화(10.2%), 형제(4.4%), 텔레비전(4.3%)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터넷이 영화나 텔레비전을 제치고 욕을 접하는 주요 경로로 부상했다.

학원 수업시간. 영어 단어 쪽지시험을 망쳤다. 어젯밤에 외웠어야 했는데 깜빡했다. “니들 개념을 밥 말아 먹었구나? 학원비 내는 니들 부모님이 불쌍하다.” 오후 9시 반. 학원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 앞차가 노란불에 멈추는 바람에 버스가 급정거했다. 앞 차 운전자가 여성임을 확인한 학원 버스 아저씨, 굳이 앞차 옆에 차를 붙이고 한마디 한다. “아줌마! 집에서 밥이나 하지. 괜히 차는 끌고 나와서….” 지지 않고 아줌마도 대꾸한다. “평생 학원 버스나 운전하고 살아라!”

피곤한 하루였다. 거실에서 TV를 켠다. 톱스타가 총출동한 리얼리티 쇼. 까칠한 캐릭터가 매력 만점인 개그맨이 다른 출연자에게 “넌 배신 깔 놈이야”라고 독설을 날린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대사는 “빡치니까(화가 나니까) 하는 소리죠”. 케이블 TV 영화 채널에서 나오는 조폭 영화에선 멋진 선글라스를 낀 주인공이 “어이 브라더, 이 ○같은 형만 믿으면 돼”라며 주옥같은 욕드립(욕 애드립) 실력을 뽐낸다.

한국과 독일의 청소년 영화를 2편씩 분석한 강명희 경기대 교수(독문학)의 ‘한국과 독일의 청소년 언어에 나타나는 폭력성: 청소년 영화에 나타나는 대화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한국 영화는 폭력적 표현이 368회, 독일 영화는 165회 등장해 한국 영화가 독일 영화보다 2배 이상으로 폭력적 표현이 많았다. 유형별로도 욕설(191 대 38), 위협(30 대 16), 성적 표현(43 대 21) 등 전반에 걸쳐 한국영화의 표현이 훨씬 거칠었다.

오! 저 배우 멋진데? 오늘 밤엔 친구들과 카카오톡 단톡(단체대화)방에서 저 배우의 대사를 한번 써먹어 볼까?


우정렬 passion@donga.com·신진우 기자

<‘말이 세상을 바꿉니다’ 사연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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