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에 공권력 첫 투입]철도노조 지도부, 경찰 첩보 입수하고 탈출로 확보한듯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사라진 지도부 어디로 갔나

경찰이 22일 사상 최초로 민노총 사무실에 강제 진입했음에도 영장이 발부된 철도노조 지도부 체포에 실패해 경찰 지휘부는 부정확한 정보를 믿고 작전을 강행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경찰은 이날 아침부터 77개 중대 7000여 명을 동원해 민노총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인근을 겹겹이 에워쌌다. 경향신문사 인근에 기동대가 배치되고, 일선 경찰서 지능팀으로 구성된 검거 전담팀이 사복을 입은 채 대기한 것은 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16일부터였다. 경찰은 “진입 당일인 22일 아침에도 휴대전화 위치추적 등을 통해 건물 내부에 체포대상자들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오후 8시경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조합원들에게 ‘무사히 대피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경찰은 오후 10시까지 13∼15층 민노총 사무실 천장까지 뜯고 올라가 확인하고 옥상까지 수색했지만 철도노조 간부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철도노조 지도부가 도피한 경위가 밝혀지지 않아 이를 두고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된다. 먼저 이날 체포영장 집행 계획이 사전에 노조 집행부에 알려졌을 개연성이다. 경향신문사 경비원은 본보 기자에게 “이미 전날(21일)부터 노조원들이 미리 사발면, 빵, 핫팩 등을 준비해서 밤새 대기했다. 경찰이 들어올 것에 대비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노조원들은 이날 ‘민주노총 압수수색… 철도지도부 새벽에 모두 대피 안전함’이라는 전단지를 미리 준비해두었다가 이 건물 14층 사무실에서 뿌리기도 했다.

체포 대상자들이 미리 탈출로를 확보해 두고 경찰의 통제가 상대적으로 소홀한 새벽 시간에 빠져나갔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실제 본보 기자가 취재를 위해 건물 내 진입을 시도해 본 결과 이 건물 뒤편의 공연장 쪽 문은 상대적으로 경비가 소홀한 편이었다. 경찰 진입 당일도 공연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이 통로를 통해 공연관계자들이 계속 오고갔다. 건물이 다소 복잡한 구조여서 경찰의 감시가 미치지 못하는 통로가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철도노조 지도부가 건물 내 다른 사무실에 숨어들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경찰이 민노총 사무실을 제외한 공간을 강제로 수색하는 것은 어렵다. 경찰이 사전에 이런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체포 실패에 대해 경찰 수뇌부와 청와대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경찰과 노조원이 물리적으로 대치하는 모습이 하루 종일 TV를 통해 생중계돼 국민 불안을 증폭시킨 점, 그런 대가를 치렀는데도 노조 집행부를 검거하지 못한 공권력의 무능을 드러낸 점 등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찰이 충분하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강제 진입을 섣불리 결정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찰이 철도노조 지도부가 민노총 사무실 안에 있다고 최종 판단한 것은 진입 작전보다 3시간 이른 22일 오전 6시가 조금 지난 시점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체포 대상자의 검거를 맡은 일선 경찰서 수사관들이 오전 6시경 작성한 보고를 종합해 진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체포 대상자가 경향신문사 건물 안에 있다는 판단의 근거다.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통해 체포 대상자의 위치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철도 노조 지도부가 수사당국을 교란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민노총 사무실 안에 두고 건물을 빠져나갔을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한 점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경찰은 뒤늦게 철도노조 집행부가 타인 명의의 ‘대포폰’을 사용 중인 것으로 보고 다시 위치 추적을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철도파업 관련 정부 측 대응을 맡았던 국토교통부와 코레일 등에서는 이날 공권력 투입 시기에 대한 의문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철도 관계자는 “파업 참여자들의 복귀율이 서서히 높아지고 국민들도 수서발 KTX 운영사 설립이 ‘철도 민영화’와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며 “일반 시민들도 철도 파업의 불편과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체감하는 시기가 됐는데 갑자기 공권력이 투입돼 여론 향방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종엽 jjj@donga.com / 세종=박재명 기자
#철도 파업#철도 노조 지도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