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인증기관-브로커 결탁… ‘친환경 마크’ 검은 트라이앵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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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드러난 농산물 인증시스템 구조적 비리…
소비자들 “친환경 농산물까지…” 분통

학부모 정모 씨(35·광주 동구)는 아토피를 앓고 있는 딸아이 때문에 먹거리에 관심이 많다. 집에서는 직접 만든 유기농 간식을 먹인다. 정 씨는 “학교에서 급식 때 아이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이는지 걱정되지만 ‘친환경 농산물로 인증받은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믿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친환경 농산물을 고르는 손쉬운 방법은 ‘인증마크’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군청의 고위 공무원과 인증업체, 유통업자가 공모해 친환경 농산물 인증을 허위로 발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 수사 결과 군청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실적을 높여 인사평가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이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 승진 수단으로 전락한 친환경 인증

식품안정 중점 검찰청인 서울서부지검 소속 부정식품사범 합동단속반(반장 김한수)은 민간 인증기관과 짜고 거짓 인증을 주도한 혐의로 전남 장성군 부군수 박모 씨(59)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친환경 관련 업무를 맡은 장성군 공무원 선모 씨(59)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16일 밝혔다. 또 검찰은 농약검출 시험성적서 등을 조작해 거짓 인증을 한 뒤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낸 혐의(친환경농업육성법위반 등)로 민간 인증기관 관련자와 농산물 유통업자 등 24명도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했다.

수사 결과 공무원들은 자신의 실적 부풀리기를 위해 불량 인증업체를 동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남도청은 친환경 농업을 역점 사업으로 삼으면서 수년째 친환경 농산물 인증 실적을 공무원들의 인사 자료로 활용해 왔다. 이번에 구속 기소된 부군수 박 씨는 인사상 혜택을 노리고 직원들에게 농가가 직접 작성해야 하는 영농일기, 생산계획서 등을 대신 작성해 친환경 농가 인증 신청 및 허가 면적을 늘리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인사를 발표하기 직전인 지난해 12월 20일부터 약 10일간 집중적으로 인증 실적을 올리는 데 집중했다. 당시 전남도청 소속 군청들 중 하위에 머물렀던 장성군은 이를 통해 실적 우수상을 받고, 포상금 1억5000만 원을 탔다. 담당 공무원 선 씨는 같은 달 사무관으로 승진했다.

○ 농민·소비자 우롱한 브로커와 민간 인증기관들

농자재 상인 브로커 10명과 민간 인증기관 6곳은 농자재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며 농가 5700곳을 끌어들였다. 이들은 인증을 받기만 하면 지자체에서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점을 악용해 거짓 인증을 남발했다.

인증기관은 실제 현장에 가 보지도 않고 인증을 내줬다. 검찰 조사 결과 이들이 인증한 농지 중에는 농산물을 경작조차 하지 않는 일반 토지가 많았다. 묘지나 저수지, 아스팔트 도로 등 친환경 농산물을 경작하기 어려운 곳에도 인증을 내줬다. 이런 식으로 이들이 인증한 친환경 농산물 경작지는 여의도 면적의 22배에 해당하는 63km² 수준이다.

이 민간 인증기관들은 브로커를 고용해 “퇴비 값이나 농기구를 지원하겠다”며 농가에 접근했다. 인증에 성공하면 지자체는 농가당 15만∼20만 원의 지원금을 준다. 이 돈 중 30%는 브로커에게 돌아가고, 나머지는 인증기관이 가져간다. 막상 농가는 별 혜택을 받지도 못한 셈이다. 적발된 기관은 친환경 인증을 받기 위해 기준이 되는 수질 시료, 토양 시료나 농약 검출 보고서 등을 조작하기도 했다.

이들이 ‘친환경 농산물 인증’을 해 지자체로부터 허가를 받아 마크를 달고 시중에 판매된 채소는 6억2000만 원어치 정도이며, 일부는 학교 급식으로 유통됐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친환경마크#불량 인증#친환경 농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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